[881인터뷰] 어처구니숲학교 홍순각 선생님 연구사업이란
2012.03.02 14:34 Edit
<어처구니숲학교>까지 오게 된 제 작은 발자국들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작은 연대의 기적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처구니숲학교라고 하면 많이 웃으십니다. 뜻을 여쭤보시면 약간은 철학적으로 답변을 드립니다. 어렸을 때 잔치가 시작되려면 잔치음식과 맷돌이 준비가 되어야합니다. 콩, 쌀 맷돌로 갈았었던 시절이지요. 하지만 맷돌도 손잡이가 없으면 잔치가 시작되지 않습니다. 맷돌에도 손잡이가 없으면 시작되지 않듯이 우주에 살면서 화폐적 가치를 매기지만 사소한 것들 하잘것없는 것들도 다 그 나름의 우주의 한 부분으로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처구니숲학교’라고 이름 붙여 보았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백혈병어린이와 가족을 위하여, 그리고 생명!
1991년 새해 수첩의 메모처럼 아들의 백혈병 발병은 평범한 직장인에서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사무국장으로 변신하게 하였고 삶의 터전도 안양이라는 도시에서 경기도 연천 고문리라는 시골에 정착. 같은 해 발간된 녹색평론의 창간독자로 생태와 대안적 삶에 대한 관심과 책읽기가 지금 살고 있는 포천시 관인면 지장산 관인봉 숲 속 생활로 이끌었고
'생명'이라는 화두를 안고 아내(붓샘)와 뜻을 함께하는 선생님들과 어처구니숲학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1. <어처구니학교>가 간판을 내걸기까지
- 아이의 병, 후원회를 구성하며 정면대결 해보자!
1991년 아들의 백혈병 발병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백혈병 아이들은 보통 3년 동안 입원과 외래진료를 반복합니다. 3년 동안 아이들이 치료를 받다보면 결국은 유급을 당하게 됩니다. 돌아가고자 해도 결국 학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다시나오게 됩니다. 이런 아이들을 도와주고자 1여년을 망설이 끝에 남이 해결하길 바라지 않고 직접 부딪혀보자 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의료진, 부모, 관련 된 사람들을 모아 서울대학어린이병원에서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의 전신인 백혈병어린이후원회를 91년 11월에 만들게 되었습니다. 삶의 과정 속에서 얻는 것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전형적인 길을 순탄하게 갈 수도 있지만, 그런 상황에 부닥쳤을 때 개인이든 가정이든 힘든 점이 많았지만 그런 삶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고 저 자신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교육을 체계화할 수 없을까 해서 교육청의 ‘특수학급’을 만든 것이 병원학교의 최초의 시작입니다. 병원학급을 특수학교로 인정해주고, 많은 자본이 들어오게 되면서 획기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 백혈병어린이재단 사무국장 10년 “버젓한 직장을 버리고 내 딛는 삶”
불안과 뒤쳐진다는 생각 그걸 뛰어넘자 많은 걸 얻다 "아빠가 자랑스럽다“
어느 날 백혈병어린이재단에서 초청장이 왔어요. 20년이 되었던 해입니다. 20년 동안의 30-40대를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초청장을 받고나니 여러 가지 기분으로 조금은 착잡했었죠. ‘도시의 번듯한 직장을 포기하고 그곳에서의 삶으로 얻은 것이 얼마나 있나.’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퇴보한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초청장을 받은 자리에 아이들과 함께 갔습니다. 그런데 아들과 딸이 '아빠 나 자랑스럽게 느끼는 것 같아' 라고 하더군요. 경제적으로 큰 원조를 받을 수 있던 일터가 아니라, ‘그곳’을 택한 것. 그 때 경제적 환경이라는 것에 물러서지 않고 한발자국 내딛어 내 앞에 부딪힌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었습니다.
위위축된 아이들을 발견하고, 자신의 아들이 자존감이 낮다는 것을 발견하고 국토대장정을 초등학교 4학년 때 시도했다가 실패. 4년 뒤에 다시 시도하여 성공.
아들의 병이 끝나고, 건강을 되찾았지만 모든 것이 원상복귀 되지는 못했습니다. 가령 아들이 병을 앓았다는 것 그 자체로 아들의 자존감이 낮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녀석이 초등학교 4학년(3살 발병 -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완치)때 경포대에서 집까지 오는 도보순례를 진행했습니다. 그녀석이 지금 태기산 행성 부근을 4박 5일 걷고 포기를 했었죠. 아들이 너무 어렸던 것일 수도 있고, 준비가 부족했었기도 하고. 4년 뒤에는 정식행사로 만들어 함께 다시 도전했습니다. 중3이 된 아들이 도보순례를 끝내고 나서는 많이 변화된 모습을 보게 되었죠.
그러면서 위축된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자연과 숲에 대한 이해를 통해 치유되는 <어처구니학교>를 생각하게 됨.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로 간다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가야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러고 싶다.” 라고 말하시는 다른 이들도 많이 있었지만 정말 쉽게 권유할 수는 없었습니다. 도시생활과 직장생활을 버리고 얻은 것도 많았지만 당시의 희생은 매우 컸습니다. 그래서 그런 희생을 줄이고, 함께 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서 내 집 옆에 빈집을 지어서 언제라도 '시골할머니 집처럼' 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던 ‘자존감’을 키우는 문제에서도 숲에서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숲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신감을 높여주어서, 학교복귀나 사회 생활하는데 뒤쳐지지 않게 자신감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010년도에 어처구니숲학교 간판을 걸게 되었습니다.
2. ‘백혈병’은 불치병이아니라 난치병입니다.
백혈병은 이제 완치를 80%율로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백혈병 환자 아이의 부모는 이젠 ‘끝’이라는 생각에 ‘병, 그 이후’를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건강회복에만 집중한 나머지 잃는 것이 많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부분을 부모 모임 등을 통해 정보공유와 경험공유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 아이가 완치된 이후에 남은 과제, 환우의 형제와 가족의 비극
“병이라는 것 사회적 약자였다는 이유로 위축된 아이들을 키워줘야겠다.”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가 20살인데 6학년 때 백혈병을 앓았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로부터 ‘차라리 그 때 죽게 내버려둘걸. 이라는 생각이 든다.’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듣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백혈병 치료가 최선이라 초등학교도 포기하고, 중학교도 포기하고 그러다보니 지금은 몸은 건강한데 친구도, 직업도 없고 무기력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고 이제는 그 아이 자신도 한탄스러운지 술주정까지 하고 있다고 말하시더군요. 그 분의 부탁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제발 좀 부탁하는 치료 받는 아이들에게 학교공부와 배움을 등한시하지 않게 해 달라.”라는 신신당부를 받았지요.
모든 환자의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아프기에 ‘건강’만 보지만 모든 부모가 그 후의 큰 후유증을 앓게 됩니다. 시골에서 어느 정도 잘살고 종자가게를 하시던 분들이 서울에 올라와 모든 것을 내던지고 일용근로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런 분들이 한, 두 분이 아니지만 그래선 안 됩니다.
<병, 그 후>는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 뿐 아니라 형제들 간에도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백혈병아동후원회에서 92년도 캠프를 하나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1박 2일의 마지막을 글로 썼습니다. 5학년 아이가 “나는 자식도 아니었어.”라는 글을 썼습니다. 동생이 백혈병에 걸려서 모든 관심이 동생에게 집중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는 모든 것에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 아이 역시 건강하지만 ‘돌봄’이 필요한 아이었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외면당한 것이 쌓여서 그날 그런 글을 발표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대안이라는 말이 없이 누구나 ‘정상적인 길’로 가면 좋은데 사회적으로, 건강이라는 부분에서 어떤 의미로 낙오된, ‘정상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아이들에게 ‘돌봄’이 필요하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환자 당사자 아이를 위한 캠프와 이후에는 그런 형제들을 위한 캠프도 따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3. 대안적 고민이 녹아있는 20년간의 도전적 활동들과 대안학교들의 접점
치료가 끝난 아이들을 따로 모임을 모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의외로 사회활동 하는 친구도 있고 학교 다니는 친구도 있었고 일반적인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단지 전체적으로 뭔가 위축이 된 아이들이었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그 이유가 무엇인가 고민했는데 그 투병생활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가슴이 아팠고, 이 아이들을 위해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대안교육 관련된 자료를 많이 읽기도 하였습니다,
- 어떻게 위축된 아이들을 키워줄까 <도보여행>
백혈병어린이재단에서 사무국장으로 행사를 진행했던 행사 중에 아들이 중3이었던 해, 도보여행 공식으로 진행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많은 아이들이 자존감이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어떻게 위축된 아이들을 키워줄까 <자전거 국토순례>
2006년도 TV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다. 사이클 국토순례인데 수능시험을 끝내고 해남 땅끝마을에 데려갔습니다. 환자 본인과 치료를 끝낸 아이, 누나를 소아암으로 잃은 아이들과 자원봉사자들과 자전거 국토순례를 진행했습니다. 그 이듬해에도 치료 끝난 아이들과 진행해서 이어지는 듯했지만 계속진행하지는 못했죠.
- 어떻게 위축된 아이들을 키워줄까 <병동의 작은 패션쇼>
중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입원을 했습니다. 항암치료를 하다 보니 머리가 끊어져서 그 아이도 머리를 완전히 자른 상태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너무 예쁜 소녀가 찾아왔는데 전혀 못 알아봤습니다. 그 아이의 건강한 모습을 보게 된 것이지요. 그런 감동을 함께해서 차태현씨에게 제안을 해서 함께 ‘패션쇼’를 진행했습니다. 차태현시와 윤정수씨가 그 모습을 보고 기쁨, 놀라움 그리고 충격들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감동들이 아이들이 스스로를 키우는 것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어떻게 위축된 아이들을 키워줄까 <치유 에세이 나눔, 완치메달 수여>
백혈병을 걸렸을 때는 그 병이 낫는 병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런 인식이 당시엔 너무 커서 방송계에 정식으로 의뢰하기도 하였습니다. 백혈병은 불치병이 아니라 난치병이기 때문에 시나리오 상에서 백혈병을 지워 달라 라고 요청한 것이지요.
2000년도 초반부터 백혈병 치료 끝난 아이들을 자주 보기 시작했습니다. 치료 끝난 아이들의 모아, 91년 연말에 처음으로 백혈병 아이들을 초청해서 부모모임을 진행했습니다. 백혈병 아이들의 투병생활을 낭독하고, 정말 그 분위기가 감동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그해부터 백혈병 소아암 치료가 끝난 아이들에게 완치메달을 달아주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무언가가 끝난 통과의례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이들이 한 단계 넘어서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어떻게 위축된 아이들을 키워줄까 <완치된 명사들과의 만남>
완치된 명사들과의 만남을 아이들과 이어주기도 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인물 중에서 백혈병이 완치된 분들 중에 세계의 3대 테너 중에 호세 카레라스라는 분이 있습니다. 내한공연을 오게 되어 아이들이 있는 병원에 와서 아이들을 격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라는 메시지를 보냈더니 일정이 너무 촉박해서 갈 수가 없다는 답과 함께 50송이 넘는 꽃다발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다음 내한공연 때 아이들을 초대해주시기도 하셨지요.
4.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병원학교의 한계
- 과정이 이어지기 힘들다 힘든 아이들끼리 있기에 힘들다.
최근의 병원학교를 보지 못해서 어떠한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초기의 모습들에서 느꼈던 것은 교육의 연속성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죠. 자원봉사자들이 오면 매번 주의와 당부를 드리는 것이 하나있습니다. 10명에게 유익한 수업을 하셨더라고 하더라도 그 다음에 아이들이 한명도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죠. 어떤 아이는 너무나 아플 수 있고, 입원실엣 30미터 되는 곳에서도 못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연속성이 치명적 한계이지만 아이들에게 기본적으로 질병치료를 위해서 배움을 등한시 하면 안 되고, 그래서 제한적이지만 계속해서 진행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5. 숲이 주는 기적, 그 경이로움
과잉행동아이 치유 사례
장애인 나무 위로 올려주는 봉사활동. 나무위에서 숲을 내려다는 경이로움
이 장미 잎사귀에 내 들숨날숨과 이어져있다.
아버지가 의사인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과잉행동증후군이어서 약을 복용하기도 했고 잘 치료되지가 않아서 결국 유학을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자퇴를 시키고 공백 기간이 있어 철딱서니학교로 보냈는데 이 아이가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과잉행동증후군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다들 굉장히 놀랐다고 하죠. 자연에서 살아가는 산촌유학으로 인한 태도 변화가 덕분에 연구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이론과 자료가 있지만 이런 부분을 좀 더 심도 있게 생각해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지구상에는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서 살고 있는데 이런 것들을 지식으로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가령 광합성 작용은 나의 목숨과 숨을 연결해준다는 것을 숲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식물이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꿔준다는 것 모두 알고 있는데 이 생명을 이어주는 것이 이름없는 풀과 나무들이 연결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숲 속에서 내가 숨을 쉬는 것이 이 장미와 교감되고 있는 그런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깨닫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자연에 경외감을 느끼며 살게 되었습니다. 집터를 닦다보면 청정지역이라 반딧불도 있고 가제가 살기도 해서 점점 고민이 커져가기도 하고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자본과 물질로부터 벗어나야 된다.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백혈병이 제 자신을 힘들게 하고 사회적으로 뒤처지게 했다는 약간의 원망이 있었는데 이런 계기가 아니었다면 얻을 수 없었던 삶에 대한 성찰 그런 것이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6.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배려하는 사회를
한 아이를 2006년도에 만났습니다. 그 아이는 받으면서 치료를 받았는데 2년이라는 짧은 기간내에 끝냈지요. 그 근방에 길산 초등학교라는 곳이 있었고, 학교로 복귀해야하는데 이런 것에 해야 할지 그런 매뉴얼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위축되어있었고, 작아져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곳을 만들어주자, 자신이 커질 수 있는 행사를 만들어보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수자원공사에 <워터투어>라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댐에 아이들을 초대하는 행사인데 제안을 했습니다. ‘백혈병을 이겨낸 아이가 학교로 돌아가는 것을 고민하는데 4박 5일 동안 50명(돌아갈 학교의 학급)을 초대해서 워터투어할 수 있느냐 했는데 흔쾌히 응해주셨습니다. 신나게 소풍하는 그 시간동안 그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학교에서 굉장히 고마워했었죠. 김병국 맥도날드 아저씨라는 분이 시간을 내어주셔서 소풍을 충주댐으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 활동을 통해 아이가 상당히 많은 자신감을 찾았지요. 50명이 1명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그만큼 위축된 아이들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50명이 1명을 위한 1회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한계가 있지만 이런 한계를 넘어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처구니숲학교에서는 백혈병을 포함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소외당하는 아픔을 겪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처구니숲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상황을 답답한 상황 속에 있는 아이들에게 숲이라는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같이 나눴으면 합니다.
아픈 아이들에게, 혹은 그 모든 소수자의 위치를 지닌 아이들은 엄청나게 소수이지만 1명이든 2명이든 소수에 대한 배려를 할 수 있는 사회가 성숙된 사회가 아닐까요. 백혈병이 예정된 것이 아니고, 얼떨결에 당했던 것이고 많은 사람들도 소수자적인 위치를 그렇게 당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회가 정말 성숙된 사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7. 지금은 고민을 응축해내는 시간
어처구니숲학교를 처음 시작한 그때는 아픈 아이와 함께 진행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어려웠고 건강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 아이들의 반응을 보았습니다. (2010 - 2011년) 프로그램 하면서 저 자신도 놀란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논리도 없고, 논리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4 살배기 아이들이 와서 숲에서 며칠 동안 있다가 갔는데, 굉장히 추운가운데에서 숲에서 놀다가 갈 때 되니까 가기 싫다면서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하는데 자기논리가 없는 아이들에 왜 숲에 와서 놀다가 추운데도 때가 되면 가기 싫다고 우는 것인지, 그것이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론적인 것을 떠나서 정말 순수한 무언가가 아이들이 얻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고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라는 고민을 던져주게 되었습니다.
어처구니숲학교가 잠시 중단된 이유가 그런 것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 입니다. 어처구니숲학교의 정체성을 찾아야하지 않겠느냐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처구니숲학교에서 나눌 수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고, 진지해져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비영리단체 만들어서 사업 지원받고 후원받고 현실적으로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만 거기에 앞서서 공익이란 부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지요. 준비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감동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더 신중하게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생각하고 당연히 해야지 생각했는데 내가 그런 자격이 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비영리단체를 만들거나 법인 만드는 건 경험 때문에 어렵지는 않습니다. 방송과 함께 모금, 후원 받는 것은 너무 익숙해져서 건물하나 받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체구성조차 못하고 있는 이유는 숲에서 하고자 하는 삶을 제대로 찾고, 제대로 가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기간을 고민하고 제대로 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프로그램 몇 개 돌리는 곳으로 멈춰서는 안 되겠다 그래서 올해 한해 더 고민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멈추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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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 학업중단예방을 위한 종합실태조사 중간보고회 개최 노원구연구사업
2011.08.30 18:16 Edit

노원구 학업중단예방을 위한 종합실태조사 연구용역 중간보고회 개최
지난 7월 19일 노원구청 소회의실에서 김성환구청장 및 노원구청 여성정책과 담당자, 오승근교수(책임연구원), 황인국센터장(서울시대안교육센터), 김지선센터장(나우청소년센터), 정재민박사(명지대청소년연구센터), 김형래관장(노원청소년수련관) 등 15명이 모여 ‘노원구 학업중단예방을 위한 종합실태조사 연구용역(이하 노원구 연구용역)’ 중간보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위 연구용역은 교육중심 녹색복지도시로서 핀란드형 교육의 노원모델을 기획하고 있는 김성환 노원구청장과 체결한 연구용역으로 노원구 학업중단 및 위기청소년의 예방 및 지원을 위한 대책 마련을 위해 실시하였습니다.
연구조사는 크게 네 가지 항목으로 첫째, 노원구내 초중고 학업중단 청소년 현황 및 실태조사, 둘째 중등학교 13개 학교의 18개 학급 561명을 대상으로 학교생활 만족도 및 학업중단 위험도 조사, 셋째 15명의 초중고 교사를 대상으로 학업중단 실태 및 원인 파악을 위한 심층면접조사, 넷째 100명의 학업중단 청소년의 욕구설문조사로 이루어졌습니다.
연구용역의 최종보고회는 노원구 위기청소년 대책마련을 위한 TF팀의 제안과 함께 9월 중반에 진행될 예정이며, 노원구에 잠재된 학업중단을 예방하고 학업중단청소년에게 실질적 지원을 강구할 수 있는 지자체중심의 지역기반형 대책을 제시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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