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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A Rolling 柴

작성자관리자

날짜2009-12-01 22:00:00

조회수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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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일부터 8일까지 6박 7일, 정선에 다녀왔던 경험은 굉장히 특이하면서 특별했다. 이번 여행은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이라는 시민문화워크숍의 일환으로 사북·고한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공예술 프로젝트1)에 참여한다는 기획으로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시인들’은 한 시민으로서 살아가며 각자 나름의 관점과 방식으로 자신이 속한 세상에 작은 변화를 더해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때의 시는 여러 의미의 ‘시(市시민/詩시/時시대/施돌봄/視관점/始근본/翅날다)’를 의미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시(柴 섶)인’이라고 생각하며 이 여행을 맞이하였다.


 


11월이 시작되자마자 첫눈과 함께 온 매서운 추위를 맞았으며, 처음으로 탄광마을이라는 곳을, 카지노라는 것이 있는 곳을 가보게 되었고, 그 과정들에서 출발 전 예상보다 훨씬 생각할 것이 많아 머리가 아픈 여행이었다. 게다가 개인 연구 과제의 일환으로 난 노래를 만들어야 했다. 나는 밥 딜런(Bob Dylan)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첫날 사북·고한 예술마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진작가가 마을 주민들 대상으로 오픈한 제임스 해리스(James Harris), 강제욱 두 작가들의 ‘사진 아뜰리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도 못한 채로 그 시간을 보냈다.


 



검은 산 위의 시간들


그리고 이튿날 오후. 이 예술마을 프로젝트에서 비디오 작업을 하고 있는 윤주경 작가를 만나 작품 ‘검은 산’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감상도 하면서 경석산에 오를 채비를 했다. 경석산은 석탄 찌꺼기들이 40여 년간 쌓여서 생긴 산이며 그 위에는 왜소하나마 잡목(柴)들이 자라나고 있다. 바로 그 꼭대기에는 놀랍게도 카지노의 주차장이 올라서있다. 여기 오기 전 이 ‘검은 산(경석산)’에 대해 들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며 온갖 상상을 했는데 정말 마치 그곳은 일종의 바위산 같았다. 아니 바위산이 맞다. 다만 온통 회검은 색 뿐. 내 두 다리와 허파로 직접 맞부딪히는 느낌은 그 시간들에 대한 경이로움과 놀라움, 광부들의 노동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고된 노동의 ‘날 것’, 그 자체였다. 폐광되기까지 40년의 세월동안 광부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2억년의 돌들을 쌓아올렸고 그것은 산이 되었다. 폐광 후, 그 무더기 산의 머리 위에는 카지노의 주차장이 들어서고 이 마을에도 경제적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지역번영회의 결정에 따라 카지노가 유치되기도 했다. 광부들은 리조트에서 일하거나, 마을에서 자영업을 하거나 도시로 떠났다고 한다. 경석산은 40년이 지나고, 그 이후 자신의 몸 위로 풀과 나무가 자라는 것과 함께 그것들을 보고 겪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존재는 그 산과 직접 부딪히는 광부들의 모습이기도 했을 것 같다.


 



폐광 그리고 삶의 흔적들


동원탄좌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폐광을 맞은 당시의 시간이 그대로 멈춰선 느낌을 받는다. 있는 그 시간 그대로의 ‘보존’이었던 광부들이 사용했던 장비에 겹겹이 묻어있는 손때들이라든지, 오랜 쓰임에 살짝 닳기도 한 손잡이들, 심지어 사무실에까지 뻗쳐있던, 전혀 의도치 않았던 ‘검정들’, 당시 사람들의 어록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꼭 그 당시의 사람이 되어있거나, 어떤 놀라운 전지적 능력으로 그 당시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석탄을 연료로 사용해 오다가 석유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석탄은 전보다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그 때문에 2004년 이후로 40년간 석탄을 캐오던 동원탄좌와 갱도는 폐광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광부 역사는 40년 정도인 셈이다. 그 사이에 경석산도 저렇게 거대하게 쌓이고, 동원탄좌의 검정들도 조금씩, 조금씩 묻어져왔겠지. 이 ‘흔적’들을 목격하고 나서부터 계속 그것들에만 시선이 가고 신경이 쏠렸다. 흔적들을 통해 광부들의 삶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노래로 쓰고 싶었다. 그렇게 결정한 나는  계속 흔적들을 보고 느끼는 데에 주력했다. 그러자 스스로에게 ‘그들의 흔적과 삶에서 현재의 나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노래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이 들었다.


동원탄좌에 곳곳에 스며든 검정들, 손때, 언어들과 경석산. 그곳에서 있는 힘을 다해 살았던 광부들의 ‘흔적 그 자체.’ 흔적이란 것은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화장실 불을 켜고 들어가려고 스위치를 보면 어느새 스위치 주변 벽지가 손때로 얼룩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았고, 내가 보고 있는 조금 닳은 손잡이들이나 검정들은 그저 자연스레 남겨진 삶의 자국이라고.


내가 동원탄좌와 경석산을 돌아보고 빠졌던 것들. 그것들에는 광부들이 위험한 막장에서부터 직접 몸을 부딪쳐 온 세월과 장소가 있었고 그 흔적들이 말하는 사실들에 난 귀 기울였던 것이다. 나는 그 시대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보존된 시간을 체험하며 마치 내가 그 시대를 살고 있기라도 한 시선을 갖는 것은 이상했다. 지금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는 내가 그 흔적들로 볼 수 있는 시간들, 또 그것들과 이어진 지금의 마을을 보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고된 광부들의 과거의 삶, 흔적, 그 때에 대한 애잔함과 현재 그리고 그곳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해 노래를 만들기로 했다. 내 마음이 잔잔히 울렸던 것들에 관해서 말이다. 그들에게 건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닿지 못할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다.


 



우리도 시인(柴人)이다.


지난 6박 7일 동안, 하자작업장학교의 우리들은 카메라를 들고, 연필과 수첩을 들고, 시를 쓰며 고한․사북을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우리는 나름대로 무언가를 열심히 관찰하고, 담고, 스케치하고, 움직이고, 글을 쓰고, 시를 지으면서 역사와 삶 속에서 이야기를 찾아내려 분주히 노력했다. (밥 딜런이 했듯이) 시대를 말한다는 것은 굉장히 울림 있는 말인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너무나 커다란 말이라 선뜻 다가서기가 퍽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우리는 왜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의 제목으로 정선에 갔던 것일까 새삼스레 생각이 많아진다.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과 이야기를 하며 나름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저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풀섶처럼, 잡목처럼 보잘것없이 보이더라도 우리도 각자 나름의 관점들을 풀어나가고 있고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하고 있다.


그것이 너무나 소소하고 느린 변화라 잘 보이지 않겠지만, 시인이 되어 세상을 구하고, 시대를 노래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작은 섶이 되는 것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市,詩,時,施,視,始,翅의 7명의 시인들도 있지만 정선에 가서, 검은 산 위에서 마주하기 시작한 시인들은 8번째, “섶(柴시)의 시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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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마을 고한사북 공공미술프로젝트는, 공공문화예술 A21의 22명의 작가가 하이원리조트 주최, 메세나협의회 공동주관으로 진행한 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이다.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들중에는 하자작업장학교의 멘토강사들이 포함되어 있어 전시기간 중 초대를 받았고, 하자작업장학교는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강좌의 현장학습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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