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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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9-06-02 16:00:00
조회수5747
"강의는 끝났지만 나는 시작입니다."
나종아 (한빛청소년대안센터 사랑의학교)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에 이화여대의 한 강의실에서 처음 모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프롤로그를 진행해주신 고유경 강사님께서 "다들 닉네임을 쓰는데, 저도 닉네임을 쓸게요. 봄 어때요?" 라고 하신 기억이 납니다(저는 닉네임을 쓰지 않습니다). 끝나고 피자를 나눠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재미있게 첫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나는데, 벌써 종강을 2주 밖에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것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끝난다는 것이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도 수요일을 항상 보람차게 보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행복했던 12주간의 독일여행을 짧게나마 정리해보려 합니다.
첫 번째 강의. 프롤로그이자, 고유경 강사님의 독일역사 개관 강의였습니다. 절 제외한 대부분의 분들이 다 알고 있는 듯싶어(자기소개 후에는 모두 '하자 작업장 학교' 라는 곳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태초에 나폴레옹이 있었다."라는 재미있는 화두를 던지며 강의는 시작합니다. 알지 못했던 독일의 역사를 훑어보며 어떻게 "시인과 철학자의 나라"였던 독일이 두 번의 세계대전의 폭력국가가 되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를 통해 한 국가의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강의가 길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많이 배운 것 같았습니다.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때 받은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르틴 루터. 가장 기억에 남는 강의였습니다. 스스로를 '마지막 아날로그 강사'라고 소개하신 백소영 강사님은 정말로 컴퓨터를 쓰지 않았습니다(정말로 쓰지 못하시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신 화이트보드에 직접 자료를 붙여가며 설명하셨습니다. 중세 기독교 세계의 당연한 사실에 '태클'을 걸며 저항한 루터의 이야기를 연표를 그려가며 설명해주셨습니다. 그 긴 대학의 화이트보드를 꽉 채워가며 쓰시는 모습이 멋졌습니다. 정말 열정에 반하고, 자료에 반하고, 강의엔 한 번 더 반했던 강의였습니다. 마지막에 주신 책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현규 강사님의 괴테도 기억에 남습니다. 단순히 "젊은 베르테의 '고뇌'"나 "파우스트"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서 계몽주의 사조가 괴테와 괴테의 작품에 미친 영향을 연관 지어 설명해주시는데 정말 재밌었습니다. 복잡했던 괴테의 작품들이 한결 이해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의 삶과 소설은 결국 연장선이란 것을 깨달으니 작품의 숨은 의미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기억이 굉장히 중요하다", "기억과 상상, 간접적 체험을 잘 융합하면 멋진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씀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자본주의의 맹점을 신랄하게 꼬집으며 민주적 사회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시던 강성윤 선생님. 맑스와 엥겔스를 통해 당시의 공황과 현재의 경제 위기를 비교하시며, 자본주의 역시 봉건주의와 마찬가지로 자본가가 개인을 착취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하게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던 제게 일침을 놓으셨습니다. 알기 어렵던 경제관념이나 용어들을 자료와 함께 재밌게 풀어주셔서 정말 좋았습니다. 뒤러의 수많은 회화와 판화를 통해 르네상스 시대를 간접체험 할 수 있었던 전혜숙 강사님도 정말 재밌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수많은 그림들을 보여주시면서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술 작품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며, 나도 저렇게 시대를 반영하여 후대 사람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작품들을 쓰겠다는 교훈을 얻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의 고통과, 실패, 시련, 좌절마저도 운명으로서 사랑하라며 좌절감에 빠져있던 제게 용기를 준 니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쉽지 않은 강의였지만, 학생들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지시며 생각하게 하신 진은영 강사님 덕분에 결국 제 것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Amor Fati!". 이 말 하나면 충분합니다.
카프카에 대한 기억도 재미있습니다. 아마 전 강의를 통틀어 가장 무언가를 많이 읽은 강의가 아닌가 합니다. 카프카의 소설은 자신의 생애를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강의였지만 많이 졸았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읽기만 해서 잠이 쏟아지더라고요. 정말 강사님께 죄송합니다.
히틀러는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영화에서 보았던 히틀러의 우렁찬 연설은 아직도 제 맘을 설레게 합니다. 20세기 전반 독일의 모습을 히틀러를 통해 들여다보며 지방 출신 화가인 히틀러가 어떻게 독일 국민들을 사로잡았으며, 패전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또 전쟁을 선택했는지를 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설명도 자세했지만,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나치 전당대회의 영상이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설명했던 시간들이 무색할 정도로 히틀러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을 울리는 연설과 오른손을 번쩍 들며 인사하는 히틀러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사진을 보면 누군지 대번에 알아맞힐 수 있는 인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익숙한, 대단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에 관한 김재영 강사님의 강의는 흥미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삶을 비롯해, 상대성이론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론, 그리고 원자폭탄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오명에 대한 검토. 많은 동영상과 플래시를 준비 해 오셔서 눈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마지막쯤에 아인슈타인을 소개한 조선어로 된 신문을 읽으면서 정말 재밌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 번 강의 후 토론이 정말 좋았습니다. 강의를 통해 들은 내용을 그냥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토론을 통해서 완전히 내 지식으로 만드는 만들 수 있었습니다. 강사만 혼자 떠드는 일방적인 강의 방식에서 벗어나, 그 내용을 통해 학생들과 소통하며 교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배운 것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을 나눈다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한 교류도 재밌었습니다. 학생들 뿐 아니라, 강사와 인솔교사까지도 커뮤니티에 참여해, 질문하고 답하며 의견을 나누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에 비해 일단 저 자신부터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만한 흡입력이 부족했던 것도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추후 개설되는 강좌에서는 더 활발한 교류와 교감이 있었으면 합니다. 강사님들께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점이나, 혼잣말처럼 말씀 하시는 부분은 분명 노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또 미숙한 컴퓨터 사용법이나, 어색하게 요즘 말을 쓰는 것, 무리한 농담들은 호감보다는 반감을 일으킵니다. 무리하게 세대를 좇으려는 모습보다는 조금 뒤떨어지더라도 자신의 방식대로 강의해 주셨으면 합니다. 억지스럽게 친해지려는 것보다는 진실한 모습으로 다가서서 있는 그대로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는 모습이 제겐 더 멋집니다. 어떤 강의에서 어떻게 뵙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땐 더 멋진 모습으로 뵐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이 점점 소외되고 등한시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한두 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학문의 뿌리는 인문학에서 출발하는데 근간을 잊고서야 어떻게 튼실한 나무로 자라날 수 있겠습니까.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끝난다는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합니다. 하지만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마냥 아쉬운 것도 아닙니다.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은 끝났지만, 이것이 계기가 되어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 인문학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또한, 인문학 부흥에도 일조하는 새로운 시작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좋은 강의를 제공해주신 모든 관계자 분들과, 서울시대안교육센터, 그리고 소개해주신 아버지께 정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더 좋은 강의에서 새로운 인연으로 만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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