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작성자관리자
날짜2009-05-04 13:00:00
조회수6815
스스로넷 미디어스쿨의 1학기 시작여행 <화려한 휴가>는 긴장과 설레임 속에서 차근차근히 시작되었다. 출발 전에 2009년도 신입생들의 입학식을 진행하고 이어서 오후 1시 반, 동서울터미널에서 경주로 향하는 시외버스에 올랐다. 길고 긴 4시간이 지나서야 우리는 경주 도리마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도리마을에 대해서 설명만 들었을 땐, 경주 시내에서도 약 30분간 차를 타고 이동해야 되는 산 속 깊이 후미진 곳에 위치하고, 도리마을 자체의 성격이 인도 오로빌 같은 공동체 마을이라고 해서 내심 걱정도 되었다. 그 산 속 깊은 곳엔 무슨 볼 것이 있겠으며, 숙소 샤워기에선 따뜻한 물이라도 나올까 싶었기 때문이다. 변기는 푸세식이 아닐까, 내가 잠자는 방엔 얼마나 많은 벌레가 기어 다닐까.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이런 걱정은 그냥 웃긴 것이었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시골 풍경은 서울에서 보던 도시 풍경과 달라 무지 신선했고 심지어 편안함도 주었다. 매일 밤마다 하늘에서 보는 별들은 서울의 야경에 비교 할 수도 없을 만큼 자연스럽고 화려했다. 숙소는 깨끗하고 편안했고 따뜻한 물도 아주 잘 나왔다.
우리 여행의 주요 활동 내용은 흙부대 집짓기와 신라 역사 문화 (경주)탐방,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흙부대 집짓기는 5평 규모의 터에 말 그대로 흙부대를 층층이 둥그렇게 쌓아올려 집을 짓는 것인데 이 흙부대 집짓기의 취지는 우리 청소년에게 현대 생활의 편리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인공 소재를 가능한 줄이면서 목재나 황토같이 소중한 천연 소재를 재활용 건축재로 이용하는 방법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첫 날 도리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쉰 다음, 둘째 날부터 앞서 말한 흙부대 집짓기를 시작했는데 우리가 하는 노동은 간단하고도 힘든 작업이었다. 햇볕이 쨍쨍 내리 쬐는 데에서 삽질하는 애들, 바스켓에 담긴 흙을 옮기는 애들, 흙부대에 흙을 쏟아 붓는 애들 (학교 선생님들과 도리 마을 분들도 포함되어있다.) 모두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일을 했다. 물론 그 와중에 농땡이 치는 애들도 간혹 가다 있긴 했지만 말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때엔 눈이나 입에 흙이 들어가서 고생했고 비가 오면 급히 철수해야만 했다. 근데 그렇게 고생한 만큼 보람도 컸다. 흙부대가 한 줄, 한 줄 쌓여 갈수록 어서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일하는 데에 큰 자극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집이 거의 형태를 찾아갈 즈음엔 우리가 허허 벌판인 이 땅위에다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이렇게 집을 지어 냈구나,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도리에서 떠날 때까지 집짓기의 끝은 보지 못했다. 집의 전체적인 구조를 완성하고 지붕도 올리고 1차 미장까지 했지만 끝을 보지 못한 것은 열흘 안에 마무리 짓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를 보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즐겁게 일하고 땀 흘리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흙부대 집짓기를 하면서 얻어가는 것도 많고 알게 된 것도 많은 점도 만족스러운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라 역사 문화 탐방(이하 경주 탐방)은 학생들을 세 조로 나눠서 하루에 한 조씩 신라 유적지로 떠나는 것이었다. 개인 당 만원, 합해서 한 주에 5~6만원이라는 정해진 예산 안에서 우리는 서로 모여 의논해서 직접 갈 곳을 정하고 이동방법, 교통비, 식사비 등을 계산해야했다. 경주 탐방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학생들의 자발적이고 성실한 참여였다. 다른 조들도 그렇고 내가 속해 있는 조 구성원들 모두 다 열심이어서 경주 탐방을 비교적 수월하게 다녀올 수 있었던 듯하다. 신라 유적지들의 대부분이 경주 시내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전거를 대여해서 자전거를 타고 둘러 볼 수 있었다. 다들 이전에 수학여행이다 뭐다 해서 경주가 낯설지는 않은 모양이다. 다행히도 생판 모르는 유적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경주 시내 지도를 쓱쓱 둘러보다 그냥 맘에 드는 곳, 한번쯤은 더 가보고 싶은 곳을 찾으면 어디든 자전거로 갔다. 경주 탐방은 흙부대 집짓기 말고도 신선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던 시간 같다. 무더운 날씨에 경주 시내를 자전거로 씽씽 달리면서 이리저리 유적지 보러 다니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었지만 재밌는 일이었다. 예산이 넉넉하진 않았던 터라 교통비 아끼려고 이래저래 머리 싸매고 고민했던 것도 그렇고 자전거 타다 지쳐 정자 같은 곳에 한 시간씩 누워서 한숨 돌렸던 것도 모두 잊지 못할 추억이다.
해질 녘 모두들 삽을 놓고, 손을 씻고 밥을 먹을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일 끝내고 먹는 밥이라서 그런 건지 그냥 밥이 너무 맛있어서 그런 건지 아무튼 행복해 보였다. 학교 자체 제작된 여행 가이드북에선 세상의 어떤 밥보다 도리의 쌀로 지은 밥이 최고라고 했는데, 전혀 틀리지 않았다. 최고다 정말! 원래 여행가서 먹는 밥이 제일 맛있다지만 도리에서의 식사는 정말 일품이었다. 여행가서 먹는 것으로 몸이 호강은 다한 듯하다. 풍성하고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매끼마다 지어주시는 세실리아 선생님과 주방팀 선생님들의 정성과 더불어서 꼭 토속적인 음식만이 아닌, 유럽식 아침식사처럼 상식을 깬 메뉴를 열흘 동안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나서 밤이 되면 도리마을 함원신 선생님께서 간략하지만 굵게 삶은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 어떻게 살아야 현명한 것인가 우리에게 들려 주셨는데, 여느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고리 타분한 얘기보다 귀에 쏙쏙 들어왔다. 남들이 이미 가고 있는 길이 아닌 자신만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삶을 살고 계신 분을 실제로 보고 그분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기에 더욱 가슴에 와 닿았던 듯하다.
스스로넷 미디어스쿨의 시작여행은 나에게도 그렇고 학교의 신입생에게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기존 제도권 학교 수련회와 많이 달랐다. 제도권 학교 수련회에서는 극기 훈련이라는 명칭을 가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아이들에게 극기를 강요하는 식으로 가르친다. 그렇지만 미디어스쿨의 여행은 극기 훈련 같은 것은 없었다. 학생들은 집짓기 노동을 통한 자기 스스로의 극기를 배울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우리는 미디어스쿨이라는 대안학교를 다닌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또 나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경주로 간 시작여행, 출발은 불안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했지만 끝에 가서 돌아보니 너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집짓기도 해보고, 우리 스스로 의논하고 계획해서 경주 탐방도 해보았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같이 땀 흘리고 밥 먹는 등 학생들 사이에 친밀감도 더 커질 수 있었던 계기를 만들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에 또 다시 여행을 가게 되면 이번 여행과는 다른 값진 것을 얻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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