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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새로운 기억을 만들다

작성자관리자

날짜2009-03-24 10:00:00

조회수5067


나에게 미술 시간은 '평가'의 시간이었다. 한 학기 내내 도화지와 '정물화'라는 장르만 주고는 무조건 '그려라'라고만 했다. '도대체 왜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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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생활을 표현하는 것을 배운 것이 좋았다. 또 수학에 자신감이 생겼다." - 참가자



"수학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참가자



" '수학'하면 안 배워서 모르고, 설명이 부족해서 모른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하던 아이가 - 첫째 날은 '수학하고 더 원수졌다!'하더니, 둘째 날 마치고는 '수학과 왜 원수졌는지 알 것 같다'는 아리송한 말을 남기며 얼굴이 밝아졌네요. 고맙습니다." -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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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평가하는 가혹한 시간
 나에게 미술 시간은 '평가'의 시간이었다. 한 학기 내내 도화지와 '정물화'라는 장르만 주고는 무조건 '그려라'라고만 했다. '도대체 왜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거야?'라며 팽팽 놀고 있는 미술 선생님을 원망했다. 나의 미술 수업시간은 원망의 악순환이 반복되다가 기말의 나쁜 성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싶은 욕구'가 없었던 나는 그 미술 수업이 정말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나에게 미술은 '평가'의 언어로 들렸다.



미술, 감동으로 변하다
 그런 나에게 미술이 상상력이 가득한 감동으로 다가온 순간이 두 번 있었다. 그 두 번의 순간은 '오로라'라는 친구가 '문'에 그림 그림을 보았을 때와 황신혜 밴드 보컬 김형태 씨의 작업실에서 그의 그림을 만났을 때다. 두 그림을 만나는 순간 나는 눈물이 나올 뻔했다. 온 몸이 찌릿했다. 난 그때서야 '미술'을 즐기는 방법을 깨달았다. 지금도 가끔 그 감동을 찾아 갤러리를 쏘다니기도 한다. 그 경험 후에 나에게 미술은 '평가 받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이 떨리는 '감동'으로 기억 되었다.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시험지를 받자마자 외우고 있던 수학 공식을 휘리릭 적던 수학시험을 상상하면, 손에 땀이 잡히고 심장이 두근두근 거린다. 수학은 '더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푸는 긴장된 경험의 연속이었다. 수학을 공부할 때면 언제나 빠른 손놀림과 낙서 가득한 연습장이 함께했고, 문제를 보는 순간 몸으로 익힌 기계적인 풀이법이 진행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긴장감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이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다른 기억을 갖다.
 그러다 우연히 수학에 대한 다른 기억을 갖게 되었다. BBC에서 만든 '
숫자 1의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였다. 다큐멘터리는 숫자 1을 중심으로 수의 역사와 수학이 우리 문명에 끼친 영향을 다룬다. 다큐멘터리는 선사시대에서부터 수메르, 이집트, 로마, 인도, 유럽과 디지털 시대까지 숫자 1이 겪어온 생을 코미디언으로 하여금 재미있는 언어로 풀이 해준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수학'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단어를 들으면, 수식을 떠올리기 전에 피타고라스가 실수를 거듭하며 지혜를 찾는 과정이 생각났다. 그렇게 나에게 수식은 이야기가 되었고, 인류가 경험한 지혜의 총체로 다가왔다. '위대한 수학자 피타고라스도 어렵고 쩔쩔매던 수학인데, 나에게도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뻔뻔한 자신감도 생겼다. 게다가 수학시험을 봐야한다는 부담감이 없었으니, 새로 갖게 된 수학에 대한 기억이 나쁘지 않았다!



수학캠프 - 같은 기억을 가진 친구들
 수학캠프는 또 다른 기억을 선물하기 위한 2일 간의 짧은 만남이었다. 수학캠프에 참여했던 아이들의 수학에 대한 기억은 나와 비슷했다. '수학을 왜 공부하는지 모르겠다', '대학가기 위해서 억지로 한다', '수학에 자신감이 없으니, 학교생활이 힘들다'는 아이들의 글을 보고 다른 기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수학 점수가 50점 이하'인 중학생을 모집 대상으로 삼았던 수학캠프는 제법 똘똘한 아이들도 소수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의 기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루 4시간, 총 8시간 동안의 만남에서 또 다른 경험을 선물해주는 것이 나의 미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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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풀 문제, 함께 고르기
 수학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부모님의 추천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말이 추천이지 사실 억지로 참여한 모습이 역력한 아이들도 있었다. 양 볼에 심술이 가득해서 '내가 여기 있는 것으로 나의 의무를 다 했어'라는 표정을 짓고 앉아 있는 친구도 있었다. '왜 그림을 그려야 하지?'라며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없었던 내 어린 시절 미술 시간의 기억이 떠올랐다. 첫 번째 선물할 기억은 캠프 참가자들의 작은 '자발성'을 찾는 것으로 시작됐다.
 나와 함께 2일 간의 캠프를 진행할 학생은 모두 4명, 중학교 1학년 남학생 2명과 중학교 2학년 여학생 2명이었다. '수학 문제를 풀자'며 자리를 고쳐 앉자마자 아이들은 의미 없이 문제를 옮겨 적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의 반사 행동을 잠깐 멈추고 '투표'를 하자고 제안했다.  총 5개의 방정식 문제 중에 자신이 가장 풀고 싶은 문제를 골라 투표를 했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5명은 우리가 풀어야할 문제를 살펴봤다. 아이들은 그제야 문제를 차분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바를 정(正)을 그려가며 투표를 마무리 했다. 자신이 풀고 싶은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고, 그 문제에 대한 자신감도 스스로 찾을 수 있었다. 자발성이 결여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고, 동시에 자신의 다음 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음을 경험하였다.



내 몸을 돌보다


 우리는 보통 수학 문제를 풀 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지 않는다. 극도의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유지하며 빠르게 풀기만을 주문받기 때문이다. 숫자들의 향연 속에 빠져서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볼 여유가 없다. 자연히 수학의 미묘함을 즐기기도 힘들고, 그 원리를 이해하기도 힘들다. 답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 되는 순간, 수학문제를 기계적으로 풀기가 쉽기 때문이다. 수학 캠프에서는 '자신이 다치지 않고, 수학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을 전해주고 싶었다.
 수학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연습을 했다. 수학문제를 스스로 고르기 전에 수학 문제를 관찰했던 것처럼, 수학 문제를 푸는 동안 자신이 느끼는 중압감이나 불안감, 초조함을 관찰하는 연습을 했다. 수학 문제를 많이 풀기보다 수학 문제를 푸는 동안에 자신의 감정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기록하고, 수학 문제를 풀이하는 단계를 밟아가며 이 변화를 리뷰하게끔 코칭했다.
 아이들은 수학문제를 차분히 관찰하며 풀기 시작했다. 자신의 풀이 과정을 적어 나가면서 꾸준히 자신의 마음도 관찰했다. 불안감이 커지는 풀이 단계에서는 '내 불안감이 왜 커질까'를 스스로 질문해보게 하였다. 수학캠프가 '놀이'와 '웃음'으로 점철된 신나는 캠프의 모습을 갖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은 적당한 긴장감과 중압감 속에서 자신의 몸을 혹사 시키지 않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힘을 기르다
 수학 캠프가 끝난 이후에 아이들의 수업 리뷰를 보고 매우 뿌듯했다. '수학의 재미를 다시 찾았다', '초등학교 이후로 수학을 포기했었는데, 다시 해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내 마음을 관찰하는 방법을 배웠다' 는 참가자들의 캠프리뷰에 수업에 참여했던 4명의 리얼에듀 팀(김승범, 김창준, 박동희, 박준표)은 보람을 느꼈다.
 수학캠프가 끝나고 1개월이 지났을 무렵, 캠프에 참여했던 김병헌(15)군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또 다른 수학캠프에 한 번 더 참여하고 싶다고 찾아왔기 때문이다. 병헌군은 '수학 캠프에 참여하고 난 후 무엇이 달라졌냐'는 질문에 "수학 문제를 풀 때, 어디가 틀렸는지 스스로 찾을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자신의 감정을 체크해가며 수학문제를 풀 때는 틀린 답을 만나더라도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새로운 기억을 선물하고 싶었던 나의 바람이 작은 빛을 만난 기분이었다.



숙제는 남았다
 수학캠프가 마냥 성공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가르치다 보니까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생겼고, 원래 기대했던 커다란 목표에 한 계단 올라섰을 뿐이었다. 또 빠른 계산 능력과 정확도를 요구하는 '전장'에 아이들이 다시 '배치'되었을 때, 리얼에듀 팀이 선물한 기억이 얼마나 남게 될지는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수학 캠프로 시작된 리얼에듀의 교육 실험은 계속 될 예정이다. 리얼에듀 팀은 현재 수학캠프에서 얻게 된 경험들을 정리해서 수학멘토링 가이드를 만들고 있다. 현장의 문제 상황에 쓰일 수 있도록 경험을 정제하는 과정이 끝나면 필통(
http://www.filltong.net)을 통해 그 경험을 공유할 것을 약속한다. 새로운 경험과 기억을 통해 감동을 찾을 수 있는 아이들이 더 많이 생기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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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3번 진행된 수학캠프 중 첫 번째 경험을 기초로 작성한 것임을 밝힌다. 3번의 캠프가 모두 새로운 시도와 방법, 접근을 하였기에 모두 다른 경험과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캠프를 함께 고민하고 진행한 리얼에듀 팀에 존경을 표한다. 항상 서로에게 자극을 주며, 스스로 학습하고 노력하는 팀이다. 캠프를 함께 해준 조금 어린 동료들인 참가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들과 함께 한 캠프를 통해 나도 많이 배우고 발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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