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작성자관리자
날짜2007-07-18 13:00:00
조회수1
1. 여로
<동북아청소년평화벨트구축을 위한 첫 번째 프로젝트 : 동북아청소년평화대장정>
2006년 4월 13일부터 서울시대안교육센터는 네트워크학교인 꿈틀, 셋넷, 하자작업장학교와 함께 <동북아시아 평화벨트구축을 위한 평화대장정 : 약칭 평화대장정>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진행했다. 평화대장정은 8월 10일 인천항에서 출발하여 중국의 대련항으로 들어가 연길과 북경을 거쳐 몽골에 24일 도착하는 팀과 8월 13일 속초항을 출발하여 러시아의 자루비노항으로 들어가 우수리스크 미하일로프카에서 고려인 청소년들을 만나고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의 바이칼을 거쳐 8월 25일 몽골의 울란바토르에서 먼저 도착한 중국~몽골 여행팀과 만나 8월 29일 청주공항으로 함께 돌아오는 팀으로 크게 나눠졌는데, 이처럼 흔하지 않은 긴 여행프로젝트를 기획한 목적은 ‘글로벌 시대의 동북아시아 청소년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다민족 감수성과 인류학적 탐사능력, 자기주도 기획능력을 함양하는 대안적 청소년 학습모델 창출’하며, ‘만나서 관계 맺고 놀이하고 사유하며 성장하는 후기근대 동아시아의 문화적 성찰적 청소년 주체 형성’을 위한 것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참가한 십대들은 낯선 곳에서 현지의 청소년들을 만나 문화적 소통을 해본 경험과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된 적이 없었던 태초의 자연이 간직한 아름다움을 느껴본 것만으로도 분명 평화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또한 중국의 동북공정과 한미FTA, 일본의 과거사 왜곡 등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 각 국의 민족주의 정책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이해당사국들의 대립과 갈등이 어느 때보다 첨예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청소년의 걸음으로 평화적이고 문화적인 교류의 길이 열릴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동북아청소년평화벨트구축을 위한 두 번째 프로젝트 : 동북아청소년평화캠프만들기>
올해 서울시대안교육센터는 지난해에 이어 ‘동북아시아’와 ‘평화’라는 키워드를 가진 두 번째 프로젝트 <동북아청소년평화캠프만들기>(약칭 평화학교)를 기획하였다. 우다다학교, 하자작업장학교, 꿈꾸는 아이들의 학교, 성장학교 별, 그리고 연해주 한민족문화학교의 청소년들이 7월 17일 속초항을 출발해 연해주 일대를 탐사하며 현지 고려인들과 생활을 함께 하면서 그들의 가계와 기억을 채록하는 것으로부터 동북아시아의 근대사와 접속하게 된다. 또한 이 과정이 지나면 평화대장정 팀은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부의 끝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약 10,000Km에 이르는 대륙횡단열차를 타게 되는데 이는 지난해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약 4,000Km 지점에 있는 이르쿠츠크에서 아쉽게 내리면서 다음 해에는 끝까지 달려보는 경험을 반드시 하는 게 좋겠다는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륙횡단열차는 움직이는 학교다. 차창을 통해 대단한 풍경들이 싫증나지 않을 속도로 지나가고, 언제나 술에 취해 있는 듯 러시아 사람들은 흔쾌하다. 승객, 승무원들에게 미리 준비해 간 매직풍선 만들기와 네일아트, 그리고 타투 스티커를 해주다 보면 언어가 하나도 통하지 않아도 며칠간을 웃으며 서로의 궁금함에 대해 소통하며 지낼 수 있는 곳이 횡단열차다. 알렝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은 생각의 산파이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 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모든 운송 수단 가운데 생각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마 기차일 것이다."라고 한 이유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2. 길 위에서 성장한다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난다>
여행에는 수많은 만남이 있다. 특히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너무나 익숙하여 각인할 수 없었던 ‘자기’라는 존재를 온전하게 느껴볼 수 있는 굉장한 만남이 있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 자기라는 존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더 나아가 왜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알아가게 된다. 이는 학습이라는 측면에서 ‘자기정체성확립’이라는 주요한 과제 해결의 과정에 해당한다. 동서고금의 순례자와 여행자들의 사색과 지혜를 담고 있는 산문집 《걷기예찬》에서 다비드 르 브르통은 여행자가 부닥칠 수밖에 없는 존재적 물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길을 따라가는 동안 조우하는 온갖 우연한 만남들의 기회는 우리를 근원적인 철학으로 초대한다. 여행자는 끊임없이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는 어디서 왔는가? 그는 어디로 가는가? 그는 누구인가?" 사실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들이 인간이라는 존재조건을 가진 자신과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에 대해 실존적 물음을 던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길은 만남이고, 만남은 학습이다>
여행에서는 이 넓은 우주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뿐 아니라 반짝이는 돌멩이 하나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겹도록 익숙한 하늘조차 처음 세상을 본 아이마냥 드러내놓고 낯선 듯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 여행이 아니었다면 평생토록 못 만났을 인연 하나 하나가 너무 소중한 것은 당연하다. 학습은 호기심을 갖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호기심이 있으니 만남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다. 사물과 현상과 역사와 수리 등 새로운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진정으로 알고 싶어 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평화학교>프로젝트에서는 수많은 배움의 순간을 만난다. 페리호를 타고 속초항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면서 해 지는 바다와 해 뜨는 바다를 동시에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저녁 12시를 기점으로 시계를 1시간 빠르게 맞춰 놓으면서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주인공이 동쪽으로 여행했기 때문에 하루를 벌게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4시간에 걸친 러시아 입국 심사를 하면서 대륙의 자존심과 기다림을 배울 수 있고, 연해주에서는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고대와 근현대의 역사에 대해, 민족이라는 핏줄에 대해, 다민족 다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에 대해 생각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 더욱이 고려인 청소년들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그들을 러시아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도, 이토록 평화롭게 만나지 않을 이유 또한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땅덩어리를 가로지르는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시간을 타고 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나그네 심정을 이해하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멋진 친구가 될 수 있다. 피부색이나 언어가 다르면 다른 만큼 같으면 같은 대로 재미난 이야기들이 오고 가게 된다. 열차 안에서의 독서는 그 책에 담긴 지혜를 송두리째 자신의 삶으로 전치시키는 사색을 가능토록 하는 묘함이 있다. 차창으로 끊임없이 변하며 펼쳐지는 풍경은 자연이 왜 스스로(自) 그러한지(然)를 알게 한다. 그래서 겸손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 있어 인간(人間)일 수 있고, 그것이 곧 평화임을 깨닫게 한다. 그 외에도 여행에서는 수많은 인연을 맺는다. 이러한 수많은 인연과 만남은 여행자로 하여금 기존에 가졌던 가치관과 사유의 벽, 그리고 소통의 방식을 열어두지 않고서는 즐거운 여행이 가능하지 않음을 스스로 터득케 한다. 다시 말해 여행은 사적 경험의 깊이와 확장을 통한 주체의 성장과 더욱 가까운 법이며 그리하여 길은 학교가 되고 평화라는 주제를 갖고 떠난 동북아시아 여행은 동북아시아평화학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십대의 체 게바라에게도 삼십대 볼프강 괴테에게도 길은 훌륭한 배움터였듯이
<그래서 길은 학교다>
앞으로의 학교는 지금처럼 수백 명의 아이들이 똑같은 시간에 규격화된 교실에서 표준화된 교과로 학습하는 공간이 아닐 것이다. 자연을 개발하면서 인류가 무한토록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꿈꾸었던 소품종 대량복제의 시대에는 그러한 공장형 학교를 나옴과 동시에 먹고 살 길이 해결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시대는 지났다. 표준화된 대량복제와 발전이 삶을 얼마나 재미없게 하는지, 소수자를 어떻게 배제하는지, 생태를 어떤 방식으로 파괴하게 되는지를 알게 되었고, 이러한 개발과 발전을 통해서는 인류의 삶이 더 이상 지속가능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미 교사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지식보다 훨씬 빠르고 많은 정보에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접근하고 있고, 한 사람의 천재가 일만 명을 먹여 살리고 나머지 일만 명이 더불어 행복한 방법을 학습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그래도 인류가 진화의 역사를 살고 있노라고 위안하게 될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돕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익히는 게 학습이 되고 놀이가 되고 그것이 각자의 일이 될 것이다. 학교는 이러한 삶이 가능토록 돕는 곳이어야 하고 작은 규모여야 한다. 교사가 전교생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 수 있고, 아이들과 돌봄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의 많은 비인가 대안학교들이 그 시작을 알린 것이고, 앞으로 훨씬 다양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평화학교> 역시 그 흐름에서 실험하고 있는 또 하나의 학교 형태일 것이다. 이 학교에서는 공간이 정해지고 그 공간에 학습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먼저 논하고 그 학습에 맞는 공간을 생각한다. 교사들이 정해놓은 커리큘럼에 학생들이 참여하는 학습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들이 성장하게 될 여행의 루트를 정하고 또 그것을 함께 진행시키기 위한 약속을 하며 여행의 경험을 보다 풍부하게 해줄 사전 지식을 서로 소통하며 정한다. 이러한 사전 학습의 과정을 거쳐 여행을 떠나고 그 여행 속에서 자신들이 준비한 학습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하며 친구가 되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때론 인생의 큰 터닝 포인트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과정으로 지난 해 여행을 함께 한 아이들은 여행 전보다 많은 면에서 성장했고 여행을 다녀와서도 경험과 정보를 외부와 소통하고 나눔으로써 한 번 더 성장하였다.
3. 동북아시아 사람 되기
<우리 공동의 미래, 동북아시아>
동북아시아는 유사 이래로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생장하고 소멸한 공동의 기억이 남아있는 곳이다. 특히 근대에 이르러 러시아와 중국,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을 두고 경합해 온 역사는 현대사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채기를 남겨놓았다. 이러한 상처를 가진 이들 중에서도 연해주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은 특별하다. 구한말 생계형 동북아 유민으로부터 시작하여 동북지역 최대 민족으로 부흥했다가 1920년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의 경험을 하고, 최근 소비에트로부터 분리 독립된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이 자민족정책을 강조하면서 다시 연해주로 오게 되지만, 이미 러시아인도 중앙아시아인도, 그렇다고 대한민국 사람도 아니게 되어버린 정체성을 갖게 된 사람들. 더 나아가 구한말 생계를 위해 연해주로 오게 되었을 때처럼 북조선에서 넘어 오는 사람들. 중국 동북공정에 발맞춰 조선족의 정체성을 갖고 연해주로 왔다가 러시아 국적을 갖게 된 사람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갖기 위해 대한민국에서 넘어와 정착한 사람들. 이들은 이미 한민족이나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넘어 동북아시아 지역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 즉 동북아시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국가 간 민족 간 경계들이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모호해지고 있는 시대에서 이미 경계에 서 있었던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변화의 시대를 자신의 삶으로 체화해버림으로써 가장 빠르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 <평화학교>의 청소년 상(像)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동북아시아 지역을 자신들의 일터이자 삶터이자 배움터로 삼아 한․중․일․러 국가 간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생태적으로 생산된 농작물과 2, 3차 가공물을 윤리적으로 유통하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여정에 다른 청소년들을 초대하면서 동북아시아의 공영을 위한 지혜를 모으고 실천하는 동북아시아인이다.
<지속가능한 동북아시아 사람의 철학 : 평화>
지난 해 함께 <평화대장정>을 함께 한 하자작업장학교의 송병기는 평화를 "고요하게(平) 밥을 먹는 것(和)"이라고 하면서 "이 소박함을 강하게 열망하는 것에서 <동북아시아 평화벨트 구축을 위한 청소년 대장정>의 여행은 계속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프로젝트는 동북아시아의 청소년들이 함께 밥상을 차리고 밥을 먹는 그림을 상상하고 지향하고 있다. 서로 나눠먹을 것을 가지고 모이는 공간, 그래서 서로를 살리는 방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만나서 사는 이야기를 하는 곳, 그들이 모인 곳에는 꽃이 피고, 그곳의 꽃씨들을 주어들고 각자가 걸어가는 길 위로 뿌리면서 꽃길을 만들어 내는 그림, 그리하여 동북아시아 곳곳에 꽃밭이 만들어지는 그림,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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