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작성자관리자
날짜2007-07-18 10:00:00
조회수3682
지식인과 청소년의 접속
- <월요학교>에서 <월목학교>로 -
박성관 / 수유연구실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학습 네트워크 <월요학교>. 이것이 우리가 지난 3월 새로운 청소년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내걸었던 말이다. 여기에는 신통하게도 우리의 꿈과 생각이 아주 잘 담겨 있다.
우리는 넓은 의미의 인문학 연구자들로서 10여 년 전 자유로운 연구자들의 공동체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만들었다. 그 후 전공 간 장벽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지적인 유영을 한껏 즐겼다. 약 5년 전에는 좀 더 다양하고 새로운 활동의 욕망이 분출하여 <연구공간 수유+너머>와는 별도로 <공간플러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공간플러스>에서 펼친 중요한 활동 중의 하나가 바로 <청소년 주말강좌>였다.
청소년과 지식인의 접속체
몇 년간 <청소년 주말강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다양한 청소년들과 만났다. 그중에서도 (홈스쿨러를 포함하여)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과의 만남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주말강좌 같은 단발성 강좌 이외에 뭔가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열심히 공부해오는 프로그램, 좀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프로그램, 무엇보다도 스승-제자 관계, 선후배 관계 그리고 친구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물론 우리 쪽의 흑심(?)도 있었다. 우리는 지식인들의 사회에 갇히지 않고 수많은 타자(他者)들과 만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섞이면서 삶의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세상을 함께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전달 모델 말고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고 싶었다. 달리 말해 지식인이 연구하여 비지식인에게 (쉽게) 전달하는 모델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질서도 없고, 학생이든 선생이든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선생도 학생도 없는 학교가 아니라 (명나라의 이단적(異端的) 사상가 이탁오를 빌어 말하자면) 강렬하게 선생도 되고 강렬하게 학생도 되는 그런 배움터를 만들고 싶었다.
두 가지 약속
이런 열망이 청소년과 지식인의 접속체 <월요학교>를 낳았다. 2007년 3월 5일, 교사 5명과 학생 22명이 모여 이규보의 「동명왕의 노래」를 낭송하면서 총 4개월 과정의 <월요학교>가 시작된 것이다. 학생들을 선발하는 절차도 분류하는 레벨 테스트도 따로 없었다. <공간플러스>를 방문하여 지신인들과의 접속에 강하게 공감하고 4개월 과정을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 공부해 나갈 책들을 열심히 읽어 올 수 있다는 학생 자신의 판단만이 필요했다. 그리고 부모님들께 두 가지 부탁을 드렸다. <월요학교>가 진행되는 도중에 선생님들께 "우리 애 어떠냐?!"는 질문을 하지 말 것, 한번 시작했으면 최소한 4개월은 끝까지 할 것. 다행히도 부모님들께서 우리의 뜻을 잘 따라주셨다. "우리 애", "우리 애" 하기 시작하면 교육은 완전히 사적(私的)인 상품이 되어버려 공동체적인 교육의 비전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도중에 포기해서는 어떤 좋은 것도 생겨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더 좋아하는 학교
한국 고전문학과 프랑스 고전문학을 읽었고, 남녀 불문 전원 참가의 체육활동을 즐겼다. 영어는 두 반으로 나눠 진행되었고 동양사상/서양철학 공부도 착실히 진행하였다. 매주 읽어 와야 하는 책들이 있었고 경우에 따라 글쓰기 과제도 있었다. 사서(四書) 중의 하나인 『대학(大學)』을 쓰고 암송하는 과목은 신선하기도 했지만 학생들의 원성도 많이 샀다(^^;). 6월 최종 수업의 시점에서 도중하차한 학생들도 있고 기대 이상의 성과에 기뻐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참여 교사들은 한결같이 "너무 좋았다"고 느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 교사들은 <월요학교>보다 더 확대된 형태, 그러니까 <월목학교>를 올 8월 중순에 시작하기로 했다. <월요학교>의 학생이자 스승 노릇을 한 게 너무나 재미있었고 많은 공부가 되었으며 또 새로운 친구들과 새롭게 공부하고 싶기 때문이다.
먼저 학동이 되자!
우리 교사들은 먼저 학동(學童)이 되고 싶었다. 진정 남으로부터 배울 수 없다면 스승이든 친구든 아무것도 될 수 없으므로. 우리는 <월요학교>를 우리 자신의 뜨거운 배움터로 만들고 싶었다. 청소년과 지식인의 접속을 위해 우리가 먼저 달구어져야 했다. 그래서 매주 교사 모임을 갖고 강의안 발표 및 토론도 했다. 동양고전은 함께 소리 내어 읽으며 공부했다. 수업 시간에 있었던 재미있는 "사건"을 나누며 기뻐하기도 하고 "온동네 웬수덩어리"같은 놈들에 대해 함께 성토하기도 했다. 교사 모임이 회를 거듭할수록 우리는 배우는 기쁨과 함께 더욱더 우리를 낮출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훌륭한 스승이기 위해 파릇파릇한 학동이 되고 있었다.
우리의 수업은 집에서 책을 읽어오는 것이 대 전제다. 선생은 물론이지만 학생들이 독서를 해오지 않는 수업이란 허약하기 이를 데 없다. 그리고 책을 단순히 읽어 오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학생들은 책에서 인상적인 문장들도 다섯 곳 뽑아서 써와야 하고 별도의 글쓰기 과제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준비해 온 참여자들이 없이는 배움이 성립할 수 없다. 남의 얘기를 듣고 적당히 구성하여 마치 제 생각인양 떠들어대는 소위 "변론가"들만 양산될 것이다. 학생들 또한 학동이 되어야 했다.
가문의 영광
<대학(大學)>을 가르칠 때는, 원문을 써오고 지난 시간에 배운 분량을 암송하라는 과제에 아이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걸 요즘 세상에 왜 배우며, 한문을 상세하게 한 글자 한 글자 가르쳐주지도 않은 채, 몇 번씩 써오고 암송해오라는 과제는 또 뭐냐는 거였다. 열심히 해오는 친구들, 아슬아슬하게 턱걸이하는 아이들, 꼭 안 외워 와서 다른 친구들에게 묻어가거나 결국 실패하면 청소를 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참! 우리는 개인 암송보다는 두세 명씩 짝을 지어 떼로 암송하는 방법을 택했다. 암송은 저 잘난 거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라 공부라는 게 함께할 수 있으며 남의 목소리로 할 수도 있다는 걸 체감하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회의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어느 학생에게 그 어머님 왈(曰), "우리 가문에서 네가 최초로 『대학』을 완독하고 외웠다. 장하다"고 하셨다고 한다. 암송 교육 만세!!!
밥을 나가서 사먹을 자유가 있나요?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생활한다.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지식인들의 공동체기 때문에, <공간플러스>의 <월목학교>에 참가하는 학생들도 우리와 함께 밥 먹고, 자신들이 놀고 공부한 공간은 함께 청소한다. 그런데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한 아이들은 육식을 뺀 야채와 해산물만을 먹는 이곳의 식단에 때로 도리질을 치기도 했다. 처음에는 "밥을 나가서 사먹을 자유가 있느냐?"는 질문도 했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원칙적으로 자유다. 그렇지만 1주일에 한 끼를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먹을 수 없다면 그에게 스승이나 친구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런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절대적으로 간섭받지 않는 그런 의미의 자유를 원한다면 이곳은 적절치 않다. 우리는 친구와 스승을 만나 새로운 앎을 얻고 자신을 새롭게 하기 위해 여기에 모였지, 자유를 요구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드물게 나가서 사먹는 아이들도 있었고 속이 안 좋을 때 굶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함께 밥을 잘 먹었다. 늘 몇 숟갈만 먹으면서도 식탁에 함께 앉았던 한 친구는 잊을 수 없다. 남김없이 먹고 빵으로 제 먹은 식기를 빡빡 닦아먹은 다음 설거지를 하고 원래 자리에 식기와 수저를 놓는 것은 기본의 기본이다.
공부는 선택이 아니다
모두가 공부를 잘 할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지만, 공부는 누구나 열심히 해야 한다. 청소년 시절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게 아니라 평생 열심히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청소년들도 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공부(學). 그러한 학습이 없다면 학자는 물론이요, 멋진 축구선수도, 남의 골을 심하게 때릴 수 있는 개그맨도, 창의적인 영화감독도 나올 수 없다. 새로운 배움이 없다면 한없이 지루한 과거의 반복일 뿐이다. 물론 협소한 공부 이미지는 훨씬 더 넓어져야겠지만, 어쨌건 모두 다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아! 좀 찔린다.
1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아침에 일어나서 책을 열고 저녁에 그 책장을 닫는 독서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독서는 생각을 책으로 가두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정서, 다른 세계를 맛보고 꿈꾸게 하는 강력한 기계다. 현실로부터 벗어남으로써 근본적으로 새롭고 신나는 세계를 상상하기! 그런데 우리의 <월요학교>와 공부가 아이들의 "잦은" 캠프 활동에 종종 단절되곤 했다. 참다운 공부를 가로막는 것이 시험만은 아닌 세상이 된 것이다. 공부에 대한 더 깊은 사유가 필요하다.
몸으로 공부한다는 것
우리 또한 몸으로 하는 공부를 중시한다. 하지만 그것은 책으로부터의 해방이라기보다는 몸과 마음을 훈련하는 심(心)과 신(身)의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것이어야 한다. 8월에 시작되는 <월목학교>는 하루 공부를 "요가 및 명상"으로 시작한다. 함께 몸을 움직이고 고요히 명상하며 하루를 여는 것이다. 다른 수업들도 미리 책을 읽고 과제물을 해오는 과정, 즉 학생들이 힘써 노력하는 과정이 전제된다. 그리고 하루에 30분 정도는 <논어>나 <도덕경> 등 고전을 소리 내어 함께 읽는다. 이른바 고전강독이다. 강독이란 이름 하에 선생님이 원문을 설명해 주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몸통을 울려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면서도 바른 자세와 분명한 목소리를 갖는 것이 목표다. 몇 천 년 전에도 울려퍼졌을 고전 낭독의 소리가 바로 이 땅에서도 오늘날 울려퍼지고 있다.
영어를 통해 세계 저편으로
영어 교육도 새롭게 해보고 싶었다. 우리는 우선 청소년들에게 깊은 감동과 낯선 세계를 느끼게 해주는 글들을 고심 끝에 선별했다. 그리하여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이나 헬렌 켈러의 반전평화 연설문, 혹은 전지구적인 공생(Symbiosis)을 그려 보인 마굴리스의 『공생(共生)하는 행성』 등을 아이들과 함께 읽기로 했다. 이런 텍스트를 읽으며 공부하는 한편, 학생들은 4개월 동안 매주 조금씩 자기 글을 써와야 한다. 물론 영어로 쓰며 세 줄이든 다섯 줄이든 좋다. 예를 들어 "나의 꿈"이라든가 "내게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주제로 4개월간 매주 조금씩 살을 붙여나간다. 수업을 이끄는 선생님 두 분은 학생들이 써 온 글을 고쳐주고 학생들은 매주 분량이 늘어가는 자신의 글을 암송해 온다. 한국인 선생님도 물론 영어로 글을 써오며 영어 사용자 선생님은 한국어로 글을 써와 매주 발표하고 암송한다.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친구가 될 수 없고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스승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꿈"과 "공생"에 대한 생각을 교환하여 영어와 한국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내다볼 것이다. 4개월 후의 풍경을 내 맘 속에 미리 당겨본다. 아이들이 하나씩 나와서 자신의 꿈과 자신에게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영어로 발표한다. 나도 네이티브 스피커도 그들에 섞여 발표한다. 그것은 지난 4개월간 갈고 다듬은 우리 모두의 꿈이자 공생의 역동적인 무늬일 것이다. 우주선을 타고 접하는 저 바깥 우주의 소리와 풍경인들 그보다 가슴 떨리겠는가!
우리의 작은 비전
동아리도 여럿 만든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넓은 공간을 함께 쓰기 때문에 여러 가지 동아리 활동이 가능하다. 농구부와 탁구부, 스페인어반, 미술반, 음악반은 새로 생기며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활동 중인 영상반에도 비집고 들어가 청소년과 성인의 구분을 없앨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 "어른들"이 동아리를 만들었지만, 앞으로는 청소년들이 자생적인 동아리를 만들어서 자신들의 마당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1년 뒤, 청소년들이 만들어 청소년-어른 구분 없이 운영되는 동아리가 생겨나는 것, 이것이 우리의 비전 중 하나다. 물론 여기에는 함께 공부하는 세미나도 포함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월목학교>의 운영과는 독립적으로 청소년들의 동아리 활동이 이후에도 계속될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게 이런 저런 애로사항과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나 별로 문제가 못된다. 우리에게는 더 하고 싶은 것, 새롭게 해 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해야 하는 공부가 산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월요학교>보다 최소 두 배는 강렬한 <월목학교>의 스승이자 친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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