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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알아두면 좋을 사람

작성자관리자

날짜2006-06-16 15:00:00

조회수3804


사람을 그린다는 것은 기억에 멜로디를 입히며 자꾸 불러보게 되는 것 같다. 위의 시 <하늘에 쓰네>는 하자작업장학교 졸업생 '원'이 감독하고 '세나'가 ...

 


'고정희' 알아두면 좋을 사람


김나연(서울시대안교육센터)


 


하늘에 쓰네


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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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하늘에 쓰네


내 먼저 그대를 사랑함은
더 나중의 기쁨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내 나중까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보다 더 먼저 즐거움의 싹을 땄기 때문이리니


가슴속 천봉에 눈물 젖는 사람이여
억조창생 물굽이에 달뜨는 사람이여
끝남이 없으니 시작도 없는 곳
시작이 없으니 멈춤 또한 없는곳,
수련꽃만 희게 희게 흔들리는 연못가에
오늘은 봉래산 학수레 날아와
하늘 난간에 적상포 걸어놓고


달나라 광한전 죽지사
열두 대의 비파에 실으니
천산의 매화향이 이와 같으랴
수묵색 그리움 만리를 적시도다
만리에 서린 사랑 오악을 감싸도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동트는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해지는 하늘에 쓰네.



사람을 그린다는 것은 기억에 멜로디를 입혀 자꾸 불러보게 되는 것 같다.
위의 시 <하늘에 쓰네>는 하자작업장학교 졸업생 '원'이 감독하고 '세나'가 음악을 담당한 영화의 삽입곡 가사로 사용되었다. 이번 고정희 추모여행에서는 '원'의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영화의 곡을 짓고 노래를 부른 세나는 고정희에 대한 그리움을 나에게 공유시키는 데에 성공한 것 같다. 함께 여행을 다녀온 많은 사람들에게도...
나는 고정희도 시도 잘 알지 못했다. 여행 가기 전 시집을 두 권 정도 읽어봤을 뿐. 그런 내가 어쩌다가 그녀의 추모 여행에 묻어가게 되었다.

지난 6월 10일 이른 아침 연세대학교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연령, 직업, 풍기는 분위기가 각각 다 다른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60대부터 10대까지... 모인 이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기란 힘들어보였다. 이 사람들은 또 하나의 문화에서 연례로 14번째 하고 있는 '고정희 추모기행'에 참여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날 그녀를 알고 사랑하던 동인들이나 지인들이 그녀를 기리기 위해 그녀의 생가와 산소를 찾아 추모제를 하던 것이 시작이 되어 이제는 생전의 그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함께 모이고 있었다. 의사, 기자, 작가, 학생, 문화작업자 등등 하는 일이나 목적은 각자 다 달라도 모두 고정희 시인을 추모하기 위해 먼 해남까지 모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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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었던 것은 10대 20대의 어린 여성들이 고정희에게 큰 존경과 애정을 보인 다는 것이었다. 존경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렇게나 열렬한 애정을 보이는 것은 특이하게 느껴졌다.
사정이 있어 이번 추모 여행에 참여하지 못한 20대 초반의 어느 문화작업자가 고정희에게 보내는 편지가 그녀의 산소 앞에서 낭독되었다. 그는 고정희가 자신에게 굉장히 의지가 되어주고 살아가는 힘을 준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시인으로서가 아닌 한명의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삶의 멘토가 되어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 이미 세상을 뜬 후에 그를 알게 된 어느 어린 여성에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된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고정희 시인과 생전에 친분이 두터웠던 조한혜정교수의 편지글도 낭독이 되었다. 고정희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물씬 묻어나는 내용에 이상하게도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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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그녀의 생가를 찾아 대단히 검소하고 책이 많은 그녀의 방에도 들어가 보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 살아있을 때 쓰던 방을 들어가 보는 경험은 나에겐 처음이었다. 그저 평범한 농가에 잘 어울리지만 조금 달라 보이는 그 방에서 내다 본 바깥 풍경은 참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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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정희 시인의 생가와 산소를 오가며 추모의 의식을 마치고 우리는 미황사라는 사찰로 이동했다.
미황사는 꽤 큰 절이었는데 산과 바람과 사찰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에서 소박하지만 '역시 음식은 전라도!'라며 감탄하게 만드는 식사를 했다. 이어 모두 모여 간단한 문화행사를 가진 후 '양성평등 문화정책 개발을 위한 지역 연계 워크숍'이 이어졌다. 제목만큼 길거나 무거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각 지역에 여성주의와 지역문화, 지역축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축제 참여자의 필요와 주최측의 의도가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또한 여성들끼리 여성주의적으로 만들었던 축제의 성공담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여성주의적인 감수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사실 고정희를 생전에 알던 사람들의 옛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의 어린세대가 고정희에게 어째서 열광하는지도 알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밖은 밤안개가 자욱하니 캄캄하고 조용한 산사에, 새소리 벌레소리나 이따금 들릴 뿐이었고, 그런 날은 누군가를 추억하기엔 너무나 좋은 날이다. 특히나 고정희 추모기행에 처음 참여한 나로서는 그날 그런 순서가 없었던 것은 무척 아쉬웠다.


 


그렇게 추모제의 주요 행사가 끝나고 다음날은 미황사에서 준비한 다도체험과 무여농원에서의 농장체험을 끝으로 고정희 추모 기행은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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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기행을 다녀온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어쩐지 동경이나 그리움 같은 감정들이 전이되어 마치 그녀를 만났던 것처럼 문득 그녀의 생각이 든다.
이번 추모기행을 통해 나는 실제 고정희 시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잘 몰라도 고정희 추모 기행을 기획한 사람들이 고정희를 어떤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는지는 느끼고 온 것 같다.



강하고, 의롭고, 따뜻하고, 진지하고, 소박하고, 쓸쓸하고, 외로웠던 故고정희 시인은 알아두면 좋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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