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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민들레사랑방 제주도 자전거 여행기] 소녀, 오름을 꿈꾸다

작성자관리자

날짜2006-05-23 10:00:00

조회수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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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동안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를 하자는 제안이 나왔을 때, 처음에는 재미있겠다는 생각보다 먼저 걱정이 앞섰다. 자전거를 타본지 오래되었을 뿐더러 내가 ...

 


소녀, 오름을 꿈꾸다


민들레사랑방 김시윤



저는 민들레 사랑방에 2년째 다니고 있는 애니메이터 지망생이고요, 사랑방 언니 오빠, 선생님들과 5월1일부터 8박9일간 제주도에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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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동안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를 하자는 제안이 나왔을 때, 처음에는 재미있겠다는 생각보다 먼저 걱정이 앞섰다. 자전거를 타본지 오래되었을 뿐더러 내가 제주도를 한 바퀴 돌 정도의 체력이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에.
하지만, 기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부딪히고 보자!’라고 생각하며 제주행 배에 올랐다.(무엇보다 동지애(?)가 느껴지는 채영언니가 있었기 때문에^-^)
조금 흥분한 채로 제주에 도착했고, 선생님이 자전거를 살펴보시는 걸 지켜보면서, 자전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작정 달리는 게 과연 괜찮은 건가하고 고민도 했다.
하지만! 자전거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시내를 빠져나와 해안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무척 좋았다.
바다 속의 시리도록 푸른색이나 외국의 휴양지 못지않게 아름다운 해변들은,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고왔다.
몇 차례 나타난 오르막길에서는 아직 기어에 익숙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내리막길에서의 상쾌함과 짜릿함은 그런 일들을 싹 잊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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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첫째 날에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심하게 기우뚱거리며 힘겹게 자전거를 타기는 했지만, 가장 힘들었던 날은 제일 많이 달린 둘째 날이었다.
아프다 못해 욱신욱신, 지끈지끈거리는 다리와 허리 등등을 자전거에 싣고 달리자니 너무나…
아프지 않았다. ‘엥?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앉아 있을 때는 아팠는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아팠던 다리가 자전거를 탈 때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가볍게 앞으로 나가기만 했다. 나는 신나게 달렸고, 그 위험하다는(?) 야간주행까지 무사히 마쳤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은 날은 넷째 날이었다. 그날은 간밤에 제주의 대안학교 들살이에 도착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하룻밤을 묵은 뒤, 들살이 학교선생님과 사진가 김영갑의 갤러리 두모악에 간 날이었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다.)
예전에도 꽤 많은 사진들을 보았고, 갤러리에도 가보았지만 오름과 하늘 두 가지만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면서 그 사진들이 속내를 보이려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름을 봤다고 오름을 안다고 하지마라’라고 했던 김영갑 선생님의 말처럼 사진속의 오름은 왠지 무언가 보여줄게 남았으니 아직 가지 말라고 손짓하는듯했다. 갤러리를 나서면서도 나는 얼떨떨했다.


이길 저길 수차례 돌아가기를 반복하면서 넷째 날이 막 저물고 있을 때, 맞바람 때문에 정신없이 달리던 우리는 목적지를 지나쳤다.
‘와, 살다보니 목적지를 지나칠 때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조금 되돌아가 간신히 숙소를 잡고 쉬게 되었다. 드디어 내일 제주시에 입성(?)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처음에 배를 타고 올 때 까지만 해도 ‘이렇게 작은 제주도가 멀면 얼마나 멀겠어.’하고 생각했고 첫날 자전거를 탈 때는‘어느 세월에 여길 다 도나...’하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완주라니.
다음날 만장굴에 들어가 오전을 보냈고, 마침내 제주시에 도착하고는 자유시간도 가졌다.
자유 시간 때는 팀을 나누었고, 나는 장터에 갔다. 제주 사람들, 또 온갖 물건이며 음식들을 보고 나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한라산의 풍경은 엄청나게 멋졌다. 발아래 있는 구름이며 넓은 들 한가운데 서있는 오름이며, 절벽들이 한눈에 보이는 것이 카메라에 다 담아갈 수 없어 아쉬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히치하이킹이었다.
히치를 처음 해본 나로서는 트럭 뒤에 타는 것도 너무 즐거웠고, 거기 앉아서 구름사이를 지나가고, 또 제주에서 보는 마지막 노을을 지켜보는 기분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었다.


자전거를 탄 날은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고, 다리가 끊어질 듯 아플 때는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지만 제주시에서 자전거를 반납한 뒤론 ‘자전거 타면 이 정도는 5분도 안 걸리는데’ ‘자전거로 달렸으면 무지 힘들었겠다’하는 생각들이 툭하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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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다른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들을 보기도 했지만 내 자신 안에 잠재되어있는 여러 가지 면들을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절대 오르지 못할 것만 같던 오르막을 순전히 오기로만 기우뚱거리면서 오른 일이나,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한라산을 등반한 일 등등.
평소에는 남에게 의존한 소소한 일들, 예를 들자면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처음으로 자전거에 짐을 묶었던 일(그리 쉽지는 않다...) 등, 남이 보기엔 정말 별것도 아니지만 처음으로 시도해보았다는 것이 나에겐 꽤 의미 있는 일이었다.


말없이 나에게 많은걸 가르쳐준 들판위에 홀로 우뚝 서있는 오름이 아직도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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