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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배움의 공동체 탐방기

작성자관리자

날짜2006-02-28 11:00:00

조회수3964


지난 1월 23일부터 28일까지, 서울시대안교육센터의 세실, 사모, 꼼지 이렇게 세 명이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동경대의 사또 마나부 교수가 주도하는 ...

 


 


일본 배움의 공동체 탐방기


이미화 (서울시대안교육센터 기획팀)





지난 1월 23일부터 28일까지, 서울시대안교육센터의 세실, 사모, 꼼지 이렇게 세 명이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동경대의 사또 마나부 교수가 주도하는 ‘배움의 공동체’를 실천하고 있는, 가큐요 중학교와 미나미 소학교를 방문하고 수업연구회에 참여했습니다.


 


 


매우 닮은, 하지만 뭔가 다른.


후지산 아래 자리 잡은 가큐요 중학교.
커다란 덩치의 학교건물, 일자형 복도, 1의 1, 1의 2... 등으로 써 놓은 반 표시 등등.
한국의 어느 중학교에 쓱 들어선 듯한 느낌이었다. 학생수가 800명이 넘는 큰 학교이고, 방과 후에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60%가 넘는다고 한다. 거기까지는 우리와 비슷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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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커다란 크기의 공립 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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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의 게시판에 붙어 있는 학생들의 글, 글씨>

그런데 뭔가 달랐다. 아이들이 너무나 차분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이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중학교 교실을 생각하면 너무나 낯설 정도로 조용했다. 점심시간에도 도란도란, 복도에서도 뛰지 않고... 손님들이 왔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은 느낌.
가큐요 중학교의 아이들은, 왁자지껄 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고 생기 있는 표정이었다.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 ‘옆의 친구에게 물어봐’


우리가 참관했던 수업은 수학으로, 컴퍼스를 이용해서 종이테이프를 접었을 때의 모양을 작도하는 문제가 주어졌다. 교실의 책상 배치는 전체적으로 칠판을 바라보고 위로 열린 ‘20060228120732296505.gif’ 이런 모양인데, 앞줄의 아이들이 뒤로 돌면 뒷줄의 다른 아이들과 3-4명씩 모둠을 이룰 수 있는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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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수업을 시작하기 전 모두 우리에게 돌 아서 ‘안녕하세요’ 라며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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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뒤를 돌아 4명 정도의 모둠을 만들 수 있고, 또 반 전체가 서로를 볼 수 있는 구조의 책상배치>
교사가 칠판에서 무언가를 설명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교사는 그야말로 수업의 진행자 역할을 하고, 아이들은 자기 모둠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기 위해 열심이었다.
먼저 문제를 푼 아이는 자신의 방식을 칠판에 나와서 설명하고, 그것에 다른 아이가 반론을 제기하고, 그 기반 위에서 또 다른 아이가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
모둠에서만이 아니라 전체 아이들이 생각을 모아나가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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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문제를 풀었던 남자아이. 모둠의 다른 아이에게 설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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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나와서 문제를 푼 아이의 답이 맞지 않다며 반론을 제기하는 모습>
그 수업을 참관하면서 인상적이었던 두 개의 장면이 있다.

하나는, 교사가 수시로 ‘000에게 물어보렴.’ 하면서, 아이들의 질문을 먼저 문제를 풀거나 어떤 힌트를 얻은 것 같은 가까운 자리의 다른 아이에게로 돌리곤 하는 것이었다.
옆의 아이에게 물어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들은 다시 자기들끼리 설명을 하고, 듣고,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서 머리를 맞댄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서로 매우 사이좋아 보였다.
이 아이들은 확실히 서로에게 개입하며, 함께 배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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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와 여자아이들이 매우 사이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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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 모두 손놓고 있던 모둠의 아이들, 수업이 끝나갈 무렵에 한 남자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또 하나는, 수업의 초반에 구성원 4명 모두가 아무런 힌트도 가지고 있지 못한 채 손놓고 있던 모둠 아이들의 변화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점점 다른 모둠 친구들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호기심을 갖는가 싶더니, 시간이 거의 끝나갈 즈음이 되어서는 모둠의 남자 아이들 둘이 다른 두 아이에게 무언가 열심히 설명을 해 주는 게 아닌가. 일반적인 학교의 수업은 초반에 그나마 가지고 있던 호기심이 점점 사라져서 언제 종이 치나 엉덩이가 들썩거릴 때 끝나는 게 대부분인데. 그 반대의 현상을 본 것이다.

자신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문제를 적은 종이만 뚫어져라 바라보던 아이들이 고개를 들고 알고 싶다는 눈빛으로 친구의 설명을 듣게 되는 과정. 사또 교수가 이야기하는 ‘학습점핑’이 그 수업에서 일어났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일본어를 몰라서 아이들 사이에 오가는 작은 대화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표정과 눈빛이 변해가는 것, 정말 알고 싶어서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내게는 정말 오랜만이었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이후, 수업연구회에서 한 교사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수업을 만들어가는 것은 자신들이라는 것을 이제 아이들이 알고 있다.”
학습의 과정에서 아이들 사이의 역동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 왔지만, ‘아이들 사이의 역동’을 교사가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아이들 스스로의 힘을 무시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수업을 통해 배우는 교사들 - 수업연구회


이번 일본 연수의 매니저였던 손우정 선생님은, 수업자체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교사들이 어떻게 수업연구회를 하는지를 보러 온 것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수업연구회를 보고 난 내 느낌은, ‘특별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것을 제대로 챙겨가고 있다.’
아마도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특별한 것이 아닐까. 교사들이 동료로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아이들이 좀 더 잘 배우게 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 서로 조언해 주고, 서로를 통해 배우는 관계를 갖게 되는 것. 당연한 일일 텐데, 잘 못하고 있는 일. 그래서 특별한 것이 된.


수업연구회에는 룰이 있다고 한다.
‘연구회를 통해서 동료를 헐뜯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배우는 것인 만큼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기, 수업에서 좋은 점, 자신이 배울 점을 찾아내기.’ 가 그것.
수업연구회를 시작하기 전에, 수업을 담당한 교사가 책상배치도를 그리고, 그 안에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써 넣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간략한 수업내용이 메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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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수학수업 수업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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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교사들이 아이들의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함께 학습하자고 마음먹는 그 순간이 바로 엄청난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
수업연구회는 수업을 진행한 교사의 간략한 평가, 그리고 같은 학년의 모든 교사들이 자신이 수업에서 본 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특별한 순서 없이, 교사들이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하면, 그 이야기에 언급된 아이들을 칠판의 책상배치도에서 찾아서 색색깔로 관계를 표시하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오는 이야기들은 주로 아이들 사이의 관계, 모둠활동을 하면서 서로 어떻게 학습의 시너지를 내게 되는지, 그것에 교사가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수업이 좀 더 활기차고 ‘점프’가 더 잘 일어나게 하려면... 등등에 관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다음의 이야기들.

‘중간 그룹 아이들은 수학을 썩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는데, 그 중 000가 먼저 풀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리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 가면서 자신의 방법에 대해서 확신을 갖게 되더라.’
‘000가 옆의 아이에게 물어볼까 말까하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옆의 친구에게 물어보라고 하셨다. 그 아이는 옆의 아이에게 물어보더니, 곧 힌트를 얻게 되어서 두 아이가 함께 답을 찾아가더라.’
‘왼쪽 뒷자리의 000는 내 수업(사회)에서도 논리적 사고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곤 하는데, 이번 수학 수업에서도 그렇더라. 그런데, 자칫하면 레벨이 너무 높아져서 못 따라오는 아이가 생길 수 있으니, 그 아이가 수업에서 ’되돌리기‘를 잘 하도록 도와야 한다.’


한 시간 남짓 진행되는 교사들의 수업연구회.
어찌 보면, 우리 네트워크 학교 교사들이 하는 아이들 이야기의 공립학교버전일 수도 있겠다. “00이가 글쎄 00 수업 시간에 이랬는데, 다른 아이들이 00이한테 뭐라뭐라고 하니까 이렇게 태도가 변하잖어~” 등등의 이야기를 교사들이 서로 얼굴만 마주보면 하곤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공식적이고 정기적인 자리가 되는 것, 일본의 이 학교들처럼 외부에까지 그 과정을 공개하게 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그 과정을 알고, 자신들이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함께 실천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본 수업연구회는 서로에게 힘이 되는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오갔다. 배움의 공동체 수업연구회의 룰이기도 한 만큼.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무리 상처내지 않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역시나 상처가 되기도 한다고.
사또 마나부 교수의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은 말이 있다.


‘상처받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계속 배우겠다는, 더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것입니다.’


 


300명이 지켜보는 수업연구회


한국에서 간 연수팀만 수업연구회에 참석했던 가큐요 중학교와는 달리, 미나미 소학교의 수업연구 발표회는 전국에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러 온 큰 발표회였다. 3개의 수업이 집중수업으로 공개되었는데, 각 교실에는 100여명의 사람들이 들어차서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로 수업을 참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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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 소학교 2학년 국어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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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명의 어른들이 참관하고 있다>
‘아이고~ 이래서야 수업하는 애들이 짜증 안내겠나?’ 싶을 정도로 작은 교실에 꽉꽉 들어차서 수업을 참관하는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하긴, 하마노고 소학교에는 NHK 카메라도 떳다 했지.. ㅡㅡ;)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의 수업. 교사에게는 이것 자체가 굉장한 변화의 계기일 수도 있겠다.

 


‘똑같은 속도로 읽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는 교사


내가 참관한 수업은 2학년 국어수업이었다. 동화책을 함께 읽으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교과서의 편집으로는 원작의 감동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2학년 교사들이 다시 복사해서 만든 교재를 사용한단다.
이 수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들이 책을 소리 내어 읽는 장면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입을 맞추어서 같은 속도로 읽기를 마쳤을 때, 몇 아이가 그 속도보다 느려서 뒤늦게 읽고 있었다. 어색해져서 웃는 그 아이들에게 교사가 말한 한 마디.
“모두 똑같은 속도로 읽지 않아도 돼요.”
그 이후로 책을 소리 내어 읽을 때에는, 아이들은 각자 제 나름의 속도로 책을 읽었고 먼저 읽은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를 가만 듣고 있었다. 내게는 그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예전에 도보여행을 할 때 우리가 아이들과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하고...
‘자기 걸음의 속도를 알고, 다른 이의 속도를 존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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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잃은 흰 망아지를 데려 온 소년의 이야기를 함께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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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해서 데려왔을 거에요’부터 ‘가지고 싶어서 데려왔을 거에요’까지 의견이 분분>
교사들의 졸업식과도 같은 심포지엄

수업참관 후에, 각 수업을 참관했던 100여명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업연구회를 진행하고, 또 그 후에는 전체 300여명이 다시 모여 심포지엄을 가졌다.
이 날의 심포지엄은 주제를 가진 발표나 토론이 있다기보다는, 미나미 소학교의 ‘배움의 공동체 실천’에 대해서 사또 마나부 교수를 비롯해서 도움을 주고 있는 동경대 교수들의 총평을 듣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이 심포지엄은, 마치 그 동안 교사들의 배움과 성장의 결과를 드러내고 자축하는 졸업식처럼 보였다. 이 심포지엄을 마치고, 미나미 소학교의 몇몇 교사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 동안은, 수업발표회나 졸업식 등 아이의 배움과 성장이 드러나는 행사를 통해서 교사도 함께 드러나고 블레싱 받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미나미 소학교 교사들의 졸업식(?)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교사들의 성장을 드러내고 격려하기 위한 세리머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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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심포지엄에서 가장 내게 와서 박혔던 사또 마나부 교수의 말 한마디.

“교사로서의 프라이드가 있는가?”
“학교가 이루어야 할 세 가지. 공공성(사회적인)/ 민주주의(학습권 보장)/ 탁월성(항상 최고의 질에 도전하는 것)”


누구와 비교해서가 아니라 교사 스스로, 학교 스스로 항상 질에 있어서 ‘최고의 교육에 도전하는 것’ 이 필요하다는 것. 교사 스스로 ‘최고의 교육에 도전하고 있다.’는 프라이드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런 프라이드를 갖고 있을까?
전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네트워크 학교 교사들이 지치는 이유 중 큰 것은 과중한 업무와 재충전의 시간 부족일 수 있지만, 또 한편 중요한 것은 자신이 ‘능력 있는 교사’라는, 혹은, 자신이 속한 학교가 ‘정말 좋은 교육, 질 높은 교육’을 한다는 자신감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아이들과 교사가 공히 배우고 성장하는 ‘배움의 공동체’,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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