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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서울시대안교육센터 심포지엄 이모저모

작성자관리자

날짜2005-12-06 10:00:00

조회수4173


배고픈 아이는 공부하지 않습니다. 배고픈 아이는 지식보다 밥을 먼저 먹고 싶어 합니다. 영혼이 배고픈 아이는 공부하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은 가정...


제5회 서울시대안교육센터 심포지엄 이모저모
강원재 (서울시대안교육센터)

 


배고픈 아이는 공부하지 않습니다. 배고픈 아이는 지식보다 밥을 먼저 먹고 싶어 합니다. 영혼이 배고픈 아이는 공부하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은 가정처럼 따뜻한 돌봄이 있는 작은 학교를 필요로 합니다. 친구, 교사, 학부모, 그리고 세상 만물과 돌봄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부터 아이의 배움과 성장은 시작될 것입니다.
교사가 불행한 학교에서 아이들이 행복할리 만무합니다. 입시경쟁과 폭력이 일상화된 교실에서 개별화된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치지만, 교사나 아이들이나 서로의 동기에 대해 묻는 법이 없습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돌보지 않는 교실에서 배움이 일어날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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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놀이단 프로젝트는 하자작업장학교의 새로운 학습실험입니다. “좋은 공연을 하기위해 악기 만들기, 세팅하기, 펀드 만들기, 표정관리, 시간관리, 공연 후기 써서 글을 잘 쓰게 되는 등 종합적인 학습을 하며, 서로 돌보고 격려하는 가운데 학습이 통째로 일어나는 이상적 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지역에 상상놀이단이 들어가면 온 마을이 축제가 되고 학습이 일어날 거라고...”


 



제5회 서울시대안교육센터의 심포지엄은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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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6일 “따뜻한 돌봄과 배움이 가능한 작은학교 만들기”라는 주제로 서울시대안교육센터의 제5회 심포지엄이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심포지엄은 지난 7월 ‘대안교육 10년의 성과와 과제’로부터 제시된 ‘1000개의 작은학교 만들기’를 위한 조건과 철학, 그리고 교사의 능력과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안병영(전 교육부장관) 선생의 기조강연, 사토마나부(동경대), 넬나딩스(콜럼비아대), 조한혜정(연세대) 선생의 기조발제, 그리고 이우경(천안여자중학교), 정현영(성미산학교), 송순재(감리교신학대), 이종태(교육혁신위원회) 선생의 통찰과 토론은 긍정의 에너지로 상호작용하며 심포지엄에 참석한 이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축복의 메시지로 전해졌습니다.


21세기 사회와 두 가지 대응모형

안병영 선생은 21세기를 세계화와 지식정보화시대라고 전제한 뒤, 이에 대한 세계 각 국과 사회 각 분야의 대응은 경쟁과 효율성을 앞세운 ‘시장모형’과 공존과 개방, 민주적 연대에 기반한 ‘상생모형’이라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상생모형에 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21세기 사회에 대한 분석은 조한혜정 선생에게서도 유사하게 이야기되었는데, 근대가 초래한 위기적 국면들에 대한 대응은 ‘신자유주의’와 ‘성찰적 근대화’로 나타나게 되는데,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교육은 후자의 기반위에 서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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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의 전제와 ‘돌봄과 배움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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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나딩스 선생은 성공적인 교육활동의 토대에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성장에 협력하는 돌봄과 신뢰의 관계 형성을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능력이라고 간주되어온 기술이 필요하며” 이러한 능력은 세심한 관찰과 배려의 행동(열중 : engrossment)에서 출발하는데, ‘열중’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에게 ‘더 많은 여유와 격려’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작은 규모의 학급’과 ‘표준화된 시험의 축소’가 있어야 하며, 이로부터 ‘아이들의 동기로부터 출발하는 커리큐럼’은 가능하다고 얘기합니다.
사토마나부 선생은 교육개혁의 전제는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이 함께 서로의 성공적 학습에 협력하는 배움의 공동체 형성”에 있으며, 학교는 배움의 공동체인 동시에 돌봄의 공동체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토 선생은 “돌봄의 공동체는 돌봄의 응답성에 의해 결합된 공동체이며 돌보고 돌봄을 받는 관계에 의해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중받는 사회를 구축하려는 윤리적 실천을 수행하는 공동체”이므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관계로부터 출발하는 ‘배움의 공동체’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사의 능력과 역할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에서의 노동자는 창의성, 팀워크, 디지털 등 <깊고 넓고 유연한> 능력이 필요하다는 게 안병영선생의 판단입니다. 이러한 능력은 학습자의 주동성에 의해 길러지기 때문에 교사의 역할은 지식과 정보제공자에서 학습자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조정자 내지 지원자”로 바뀌게 되지만 넬나딩스 선생의 이야기처럼 “수학교사라 하더라도 철학, 생물학, 역사, 소설, 과학, 음악 등의 시사문제를 끌어와 학생들이 흥미 있어 하는 주제들을 의미있는 방향으로 끌어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지적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작은학교의 선생님이 될 자격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의 생각을 듣는 즐거움, 그리고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일들을 벌여가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며 “아이의 욕구와 상태를 읽고, 가르치려들기보다는 들을 줄 알고, 아이를 배려함으로 배려함을 배우는 아이를 길러내는”게 역할이라는 조한혜정 선생의 맥락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토 선생은 새로운 학교의 교사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사토 선생에게 교사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배울 권리를 실현하고 높은 수준의 배움에 도전할 기회를 보장”하는 사람임과 동시에 아이들과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전문가’입니다.

교육적 실천과 방향
“배움의 실천은 경계넘기의 실천”이라는 게 사토선생의 실천론입니다. 다시 말해 배움의 실천은 “동일성에 따라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활동과 경험의 의미세계를 규제하고 있는 (차이의) “경계를 넘어서는 실천으로서 수행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넬나딩스 선생은 “도덕의 상호의존성”, 즉 “내가 얼마나 선하게 행동할 것인가는 상당한 부분이 당신이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달음에서 비롯된다고 하였으며, 조한선생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의 생각을 듣는 즐거움을 아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안병영 선생은 끝으로 대안교육진영의 앞으로의 실천적 과제로 “우수한 교사의 문제”와 “질적 성장과 내실화”를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대안교육연구센터’가 필요하며, 더불어 “도덕적, 지적 발전을 공동으로 추구하는 ‘규범적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크기가 문제’라는 조한혜정 선생의 실천적 전망은 분명한 듯 합니다. “교장이 아이들의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있고” “교사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상상의 학교를 실제 만들어갈 수 있으며” “가정과 같이 따뜻한 돌봄과 배움이 있는” ‘작은 학교’들이 많이 생겨나 “우리사회가 배려와 돌봄의 능력을 회복해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돌봄의 관계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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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학교 아이들의 생기발랄하고 행복한 공연모습을 보니, 공립학교의 아이들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프고, 부러웠습니다”
천안여중 이우경선생의 주제토론의 말은 넬나딩스 선생의 이야기처럼 교육이 본질적으로 돌봄이어야 하는 이유는 “생명의 요구에 부응하는, 세대교체에 관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이를 위해서 조한의 이야기처럼 교사는 근대성에 길들여진 ‘몸’을 바꿔내야 하고, 학교는 근대적 ‘세팅’을 바꿔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근대성의 탈피를 위해 사토마나부 선생의 실천론은 대단히 유용할 수 있음을 “교과서를 버리고 아이들의 삶으로부터의 교재를 사용한 경험”을 통해 이야기 하였습니다.

배려와 돌봄의 관계는 언제나 유용한가?
“근대적 교육을 받고 자란 교사 스스로 근대성을 벗어나 창의성을 가지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성미산학교의 정현영 선생은 아이들이 교사보다 훨씬 많은 지식과 정보를 빠르게 찾아내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생겼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배려로부터 소통과 관계맺기의 과정을 만들어 가는 것이 교육적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에 대한 학교에서의 배려와 가정에서의 배려가 현격히 차이가 나면서,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 갈등이 생겨났는데, 이러한 경우에 배려와 돌봄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넬나딩스 선생은 “부모와 정기적으로 포럼을 가져야 하며, 규율의 문제에서 학습에 문제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배움 공동체의 철학적 기반과 돌봄 학습의 접점들
송순재 선생은 사토마나부 선생이 제시한 하마노고 초등학교의 사례가 “개별화 학습구조임과 동시에 공동체성을 증진하는 학습구조”로서 그동안 시도되어온 ‘수준별학습구조’의 단점을 넘어설 수 있는 모형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이러한 모형이 기반하고 있는 철학의 성격과 방법에 대해 묻습니다. 그리고 넬나딩스, 페테젠, 프레네, 그리고 접장(接長)이 있는 전통 서당교육으로부터 돌봄 학습의 동시대적 접점들을 같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걸 제안합니다. 이에 대해 사토마나부 선생은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나딩스 교수, 존 듀이와 많이 통하며, 학교 모형은 주요하게는 프레네이고 17개국을 돌며 학교의 개혁을 배워온 것에서 시작했으며, 세계 각 국의 200개 학교의 모습을 살펴보고 믹스한 디자인”이 ‘배움의 공동체’ 모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따뜻한 돌봄과 배움이 가능한 학교,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종태 위원은 발표자와 토론자들의 철학적 기반과 교육적 논제들에 대한 긍정으로부터, 이러한 학교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방향을 ‘학습의 장으로서의 학교’, ‘확산과 내실화를 위한 제도’, 그리고 ‘돌봄의 능력을 갖춘 전문성 있는 교사’로 제시하였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과제는 이번 대안학교 법제화 과정을 통해 얼마간 해소되어갈 수 있지만, 세 번째 과제는 심포지엄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함께 지혜를 모아가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교육의 목적’을 다시 묻다
끝으로 심포지엄 참가자들이 함께 하는 종합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이우경 선생이 가졌던, 송순재 선생이 물었던, 그리고 넬나딩스 선생이 심포지엄 자료집에 넣어달라며 보내왔던, ‘교육의 목적’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역시 돌봄의 공동체든 배움의 공동체든 ‘왜?’ 그것이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에서 실천 방법들에 대한 동의나 의문에 대한 해소가 가능해지나 봅니다.
이에 대해 사토마나부 선생은 ‘신뢰를 회복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넬나딩스 선생 또한 유사하게 심포지엄 참석자가 한 “규율과 자율의 적절함”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제대로된 선택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배움이 필요한 것이 중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하는 규율과 자율이 균형을 이루어가는 민주주의’라고 이야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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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을 마치며...
먹기만 하고 움직이고 배설하지 않아 소화불량이 된 아이에게 무언가를 더 먹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것이 근대 학교의 지식교육입니다. 배움은 스스로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찾아 섭렵할 때 가장 빠르게 진행될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더 이상 배움에 배고프지 않은 아이들이 “잠자거나 연애하거나 때리거나” 할 뿐입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돌보는 관계가 형성된 교실에서 지식의 소화불량에 걸리는 아이나 지식의 고갈을 이야기하는 교사는 없을 듯 합니다. 배움이 곧 나눔이 되고, 나눔이 곧 서로의 성장이 되기 때문일 겁니다. 서울시대안교육센터는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이미 만들어졌거나 앞으로 만들어질 많은 작은 학교들의 모습이 어떠할 것인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심포지엄을 관심 깊게 지켜보며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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